우리나라에서 ‘산악영화제’가 열리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것도 국제영화제입니다. 오는 9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 동안, 올해 4번째로 열리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입니다. 아마 이젠 산악영화 마니아가 된 독자도 많으실 것입니다. 이른바 영남알프스를 병풍처럼 펼쳐 놓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울산 울주의 영화축제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부산에 ‘영화의 바다’를 펼친다면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는 울산에 ‘영화의 산’을 솟아오르게 만듭니다.
영화제 하이라이트는 ‘개막작’입니다. 지난해 개막작은 ‘던 월(Dawn Wall)’이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요세미티 엘 캐피탄의 거벽 던 월을 19일간 오른 도전을 영상에 담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 등반은 미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상영 후 관객들의 기립박수로 이어졌습니다. 저도 벌떡 일어서 박수를 보낸 관객 중 한 명입니다.
극영화는 스토리와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지만 산악영화는 날 것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보석으로 치자면 원석이며, 사람의 민낯을 통해 도전의 희로애락을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다큐멘터리의 감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올 영화제의 개막작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았습니다. 바르샤바 출신의 미하우 슬리마 감독의 ‘피아노를 히말라야로(Piano to Zanskar)’였습니다. 영화제 측이 소개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평생을 런던에서 피아노 조율사로 일해 온 65세 남자. 그는 은퇴를 앞두고 길도 없는 히말라야 산골 작은 마을인 잔스카에 있는 학교로 피아노를 가져다주기로 했습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피아노 운반과 조립을 도와 줄 20대 2명과 길을 떠납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피아노에서 울려 퍼질 소리가. 반짝이며 빛날 그곳 학생들의 눈동자가. 저는 스크리닝 타임 89분간 어떤 감동의 골짜기를 그들과 함께 헤매다 듣게 될 천상의 피아노 소리에 벌써부터 설렙니다. 올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개막작을 시작으로 모두 45개국에서 출품한 15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고 합니다.
영화제는 영화를 만나는 축제입니다. 하지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산과 자연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축제입니다. 자기 인생과 목숨을 던져 산으로 가는 새 길을 낸 세계적 산악인의 기록은 자서전보다 더 감동적입니다. ‘산악계의 전설’들을 스크린이나 강연으로 만날 수 있어 역시 설렙니다.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8848m에 발자취를 남긴, 1953년 5월 29일 영국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의 초등 기록을 ‘1953 에베레스트 등정’이란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힐러리 경이 내레이션에 직접 참가했다니 인간에게 첫 길을 허락해준 1953년 에베레스트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2016년 산악영화제 초대 손님으로 다녀간 라인홀트 메스너도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1978년 8월 동료 하벨러와 함께 인류 최초로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합니다. ‘에베레스트·최후의 한 걸음’이란 영화를 통해 산소통을 벗어 던지고 지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오른 새로운 알피니즘의 탄생 순간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라인홀트 메스너는 지상의 8000m급 14좌를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하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오스카상을 거머쥔 ‘프리 솔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직고도 1000m의 요세미티 엘 캐피탄을 프리 솔로로 등반하는 알렉스 호놀드. 프리 솔로란 파트너 로프 장비 없이 오직 맨 몸으로 암벽을 오르는 목숨을 건 도전입니다. 알렉스 호놀드는 2017년 6월 3일 3시간 56분 만에 정상에 섰습니다.
세계적인 산악인에게 수여하는 ‘2019 울주세계산악문화상’은 오스트리아 산악인으로 ‘8000m의 카메라맨’이란 별명을 지닌 ‘쿠르트 딤베르거’입니다. 86세의 고령이지만 영화제에 직접 참여합니다. 그가 찍은 영화 ‘수정산’ ‘K2-꿈 그리고 운명’ 등 2편도 상영됩니다.
올해 영화의 산에 작은 숲과 같은 ‘달팽이 책방’도 만듭니다. 영화를 보다 지칠 때 야외에 마련된 작은 책방에서 산악인의 저서와 인문학 도서, 시집과 동화집 등을 읽을 수가 있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스스로 높아져 위엄을 만들고 스스로 낮아져 휴식을 만드는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란 산에서 언제나처럼 그대를 만나고 싶습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