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지급결제시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고객은 분명 체크카드로 식사비를 지불했는데 식당에서는 직불카드로 결제가 되었다. 집적회로(IC) 카드를 이용한 변칙 결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체크카드와 직불카드는 계좌 잔액 범위 내에서 결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다. 그러나 결제 원리, 혜택, 수수료 체계는 다르다. 체크카드는 신용카드사 결제망을 활용하고 직불카드는 은행망을 이용한다. 체크카드는 포인트 적립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지만 직불카드는 이 같은 혜택이 없다. 가맹점 수수료는 직불카드가 결제 금액의 통상 1%, 체크카드는 1.5%에 계좌이체 수수료가 더해진다. 사정이 이러니 고객은 혜택이 많은 체크카드 사용을 선호하는 것이고, 가맹점주는 수수료가 저렴한 직불카드 결제를 선호하는 것이다. 고객과 점주 간의 이러한 이해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수료는 ‘제로(zero)’로 만드는 조치가 필요하다.
2014년의 일로 기억된다. 국내 모 업체에서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을 야심작으로 출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 제조능력 보유 업체답게 새 스마트폰은 최첨단의 하드웨어기능을 장착하고 있었다. 하드웨어 기능면에서의 그러한 자신감은 당연히 판매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판매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오히려 하드웨어 기능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경쟁사의 제품이 더 많이 팔렸다. 당시 그 원인을 두고 산업계는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진상파악에 나선 것으로 들었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 중의 하나가 바로 ‘페이(pay)’ 즉, 지급결제시스템(payment system)의 장착여부였다고 한다.
위 두 사례의 키워드를 하나로 조합하면 ‘제로페이’ 즉, 가맹점 결제수수료가 ‘제로’인 ‘페이’가 된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수수료가 없는 결제서비스로서 정부, 지자체 등이 협력하여 도입한 QR코드 방식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이다. 앱투앱 결제 방식으로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현금을 주고받지 않아도 결제가 이루어지며, 중간 결제 업체의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약 80%를 차지하는 연매출 8억 원 이하의 가맹점에는 0%의 결제수수료율이 적용되고, 이후 연매출 8~12억 원 구간대에 있는 가맹점들에는 0.3%, 연매출이 12억을 초과한 가맹점들에 는 0.5%의 결제수수료율이 적용된다. 이를 카드결제 시의 수수료와 비교해 보면, 연매출이 3억 원인 가맹점의 경우 최대 연 240만 원, 연매출이 5억 원인 가맹점의 경우 최대 연 650만 원, 연매출이 8억 원인 가맹점의 경우 최대 연 1120만 원의 결제수수료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난 40여 년간 너무 커버린 카드결제시스템과의 힘겨운 경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제로페이의 미래는 밝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전 세계 평균 보급률인 48%를 크게 상회한다. 모바일 결제시스템으로의 이행을 위한 기기 측면에서의 기반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 부산시와 부산신용보증재단 주도 하에 진행되는 제로페이 확산사업이 이달부터 광역·기초지자체, 지방공기업들의 업무추진비 지급, 대중교통요금 결제, 제세공과금 납부영역으로까지 확대되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특별이벤트기간(7월1일~9월30일)에 주어지는 7%의 페이백보너스 효과도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1984’라는 소설에서 조지 오웰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되는 미래사회의 빅 브라더는 아마도 빅데이터가 될 것이다. 제로페이는 단순한 지급결제시스템을 넘어, 때로는 매우 영리한 POS(Point Of Sales)시스템으로서, 때로는 Korea MIS로서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기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최적의 사회간접자본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부산신용보증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