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애초 이번 주 예정이었던 여름휴가를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 북한의 거듭된 으름장, 깊어만 가는 경제의 주름살 등 현안이 엉켜 있는 가운데 마음 편하게 휴가 갈 입장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휴식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면서 휴가를 알뜰하게 챙기던 문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대선공약까지 스스로 파기하는 형국이 되었다.
사실 문 대통령은 어떤 측면에서는 참 불운한 대통령이다. 우선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말미암아 당선 즉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다른 대통령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비전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데 반해 문 대통령은 그런 기회가 없었다. 더욱 불우한 것은 전직 대통령들의 국가경영의 경험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 문화가 정립된 미국을 보자. 나라가 어려움에 빠질 때면 예외 없이 전직 대통령들이 나서서 국론을 모으고 또 현직 대통령의 짐을 덜어준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만나서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은다. 역사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만이 가지는 고민과 통찰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가장 잘 활용했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IMF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을 자주 청와대로 초청하여 지혜를 모으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의 악연은 세상이 다 안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했다. 오죽하면 전 전 대통령이 “DJ 때가 가장 편안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에 생존한 전직 대통령은 4명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전직이 한 명도 없다. 전 전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인간이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가택연금 상태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갇혀 있다. 문 대통령이 혹시라도 의견을 구해볼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것이다.
일본이 벌이는 경제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일본은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다. 예전 조국 교수가 자주 썼던 표현인 ‘육참골단(肉斬骨斷)’하겠다는 뜻이다. 자기가 어느 정도 피해를 보더라도 차제에 우리의 등뼈를 분질러놓겠다는 각오다. 다시는 자기에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기를 꺾어놓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올해 대한민국의 위태로움은 1997년 IMF 당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본다.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버젓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심지어 독도 영공을 유린했다. 대한민국의 현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게다가 미국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일본은 노골적으로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이런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급선무는 우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1975년 자유베트남이 공산화되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다. 그러면서도 당시 신민당 김영삼 총재와 영수회담을 한다. 김영삼 총재와 장시간 대화를 통해 일정 부분 야당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엄혹한 유신시절에도 대화를 통해 야당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이순신과 12척의 배’ 그리고 ‘의병’과 ‘죽창가’를 부르고 있다. ‘애국과 이적(利敵)’의 이분법 시각으로 국민을 나누고 “쫄지 말자”며 외치는 게 전부인 듯하다. 국제정치는 냉엄한 현실이다. 국민이 혼연일체의 한 마음이 된 상황에서 정부는 정치력과 외교력으로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먼저 흥분하니 딱한 일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는 게 옳다. 문 대통령이 반납한 여름휴가 기간 제1 야당의 리더인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도 만나야 한다. 자신을 외면하는 국민 절반의 마음을 얻으려는 진정성과 절박함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정부는 다른 나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법이다.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