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교육청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일랜드의 비에스타 교수는 ‘자기를 제한하는 힘을 키우는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민주주의가 자유만을 중시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제한’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기 제한은 학습되고 내면화되어야 하는 성향으로, 고통스럽게 체득되는 자질이다. 어린 시기에 자신의 욕망을 적절하게 제한하는 방법을 익혀야 민주시민으로 길러질 수 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배우고 어떤 저항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다면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공동체적 욕망으로 전환하지 못할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아동 중심 교육’ ‘학생 중심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세계 이해를 소홀히 할 위험이 있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시민교육은 권리 주창만의 교육이 아니라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상실된 권리를 찾아주는 정치적 시민성이기도 하지만, 자기 욕망을 통제하는 도덕적 시민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적 교육 방법으로 정원 가꾸기나 동물 키우기, 석재나 목재를 다루는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식물을 내 마음대로 빨리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쏟아도 때로는 식물을 죽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엄청난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 욕망의 한계를 배우는 것이다.
또 돌덩이로 만들고 싶어 하는 조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전혀 진척시킬 수 없는 경험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돌덩이의 특정 부분을 너무 세게 망치로 두들기면 깨질 수도 있다. 세계의 저항에 맞닥뜨리며 아이들이 경험하는 좌절감은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뒤로 물러서는 용단이 정말로 중요하다. 포기하거나 철수하거나 더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을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아이들의 계획이 다른 사람 또는 세계에 의해 중단되거나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존재할 자율의 여지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너무 많이 뒤로 물러나면 세계 속에 존재할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자기 파괴’ 또는 ‘자기도취’의 위험이 있다.
여성 철학자 한나 아랜트도 아이들을 ‘세계에 낀 존재’라고 하였다. 뒤에서도(과거의 세계), 앞에서도(미래의 세계) 서로 아이들이 밀고 당겨지면서 그들은 매우 불안한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발달과 성장 중에 있는 아이들은 타락한 어른들의 세계에 너무 개입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자신의 자아에 지나치게 몰입해도 안 된다. 아이들에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절제의 정치가 필요하다. 세계 파괴와 자기 파괴라는 양 극단의 위험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이긴 하지만, 중간지대에 머무는 실천적 지혜로서 ‘중용’의 태도가 요구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성숙한 방식’으로,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조정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를 권리 추구나 제도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욕망 관리’를 민주주의와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욕망을 지닌 인간 존재는 자신의 욕망을 적절하게 제한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철학은 욕망 관리로부터 시작되며, 이것은 민주적인 심장을 갖게 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민주주의자들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이것은 자기를 제한하는 민주적 시민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어른, 특히 교육자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민주시민교육은 단지 인지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의지를 갖게 하는 교육으로서 일상생활을 통한 민주적 실천을 하는 공동체적 활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부산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