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전쟁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해운조선 분야에도 경제전쟁의 여파가 언제 미칠지 모른다. 반도체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일부 기술 및 부품에 대한 일본의 보복조치가 조선해양 분야에서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조선업이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조선기자재 부분에서는 일본 기술과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일본조선공업협회의 분석에 의하면 일본은 자국에서 건조하는 선박에 사용되는 기자재의 100%를 자국에서 조달하고 있으나 한국은 75%, 중국은 50%라고 한다. 일본 조선업의 강점은 자국에서 조달한 기자재로 선주가 원하는 납기를 정확하게 맞춰줄 수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은 일본의 기자재 업체의 상황에 따라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예를 들어 최근 국내 선박관리업체가 관리하는 LNG 선박에 보급한 기자재 리스트를 보면 트랜스미터는 요코카와, 필터는 타이세이코교, 벤젠검지관은 가스텍, 가변저항기는 코스모스토쿄, 포말 용액은 카시와, 수위계 가스켓은 사와다세이사쿠쇼, 스크류 펌프의 로터는 코사카래보래토리처럼 모두 일본업체에 발주해야 했다. 비록 구형 스팀터빈 엔진 선박이지만 아직 주요 조선기자재의 일본 종속은 심각하다. 레이더 콤파스 조타기 등 항해통신장비부터 엔진 샤프트와 같은 핵심 부품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재팬’ 없는 해양조선업은 상상할 수 없다.
만약 반도체와 같은 상황이 조선업에도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생각하기도 싫다. LNG선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인 펌프나 밸브조차 고가의 제품은 일본, 중저가 제품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 기술에 종속되어 있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일본에 대한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우리 기술에 근거한 우리 기자재의 사용이 우선하도록 연구개발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누가, 어디서 그것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국내에서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통합되어 만들어질 한국해양조선의 본사를 어디로 둘 것인가를 두고 울산시가 열성적인 유치 노력을 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은 울산과 거제 사이에 자리 잡아 양 도시 간 이동이 편리하며 국제공항도 있어 외국인 바이어의 출입도 쉬운 부산이 조선해양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수도권의 판교보다는 클러스터 효과를 기대하기에도,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훨씬 낫다.
하지만 본사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기업의 경영 정책에 따른 결정을 존중해야 하고, 또 본사 유치를 위해 투쟁하는 울산시나 거제시와 협력하면서 해양수도 부산이 지닌 강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통합 조선회사의 연구본부를 지금의 판교나 마곡이 아닌 부산의 에코델타시티에 유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부산은 대형 조선소가 있는 울산과 거제의 중간 위치라는 지리적 입지뿐만 아니라 해양금융기관이 모두 이전해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선급 등 인증 검사기관, 건조된 선박에 사용되는 조선기자재 업체 등의 연관업체,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박관리업체, 여기에 해당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역량을 갖춘 부산대 조선공학과, 선박 운항을 담당하는 한국해양대 해사대학, 수산 분야의 부경대 등 해운조선과 관련된 인재 양성기관 등이 모여 있어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해운조선 산관학연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은 해양수도라고 자처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회사들은 젊고 유능한 인재를 모집하려면 수도권에 연구본부를 두어야 한다는 논리로 울산이나 거제가 아닌 경기도 판교나 김포공항 인근의 마곡에 연구본부를 두고 있다. 부산에서도 해양조선 분야의 우수한 인력 양성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를 받아줄 기업 연구시설은 없다. 부산은 조선사들이 수도권의 매력으로 내세우는 국내외 우수 연구 인력을 모을 수 있으며, 대도시의 장점을 갖추고 있어 조선소를 이용하는 외국인도 자녀 교육 등에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더구나 해외 각국과 바로 연결되는 국제공항이 있어 해외 바이어가 바로 찾아올 수 있다.
부산시는 지금 당장 이런 점을 어필하며 대형 조선업체의 연구본부 유치에 나서야 한다. 부산 강서구에 추진 중인 에코델타시티에 세계 최고의 해양 관련 연구시설과 주거를 만든다는 그림을 그리고 대형 조선업체의 연구본부를 유치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산시가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도 더욱 당위성을 갖게 되고 부산시가 한국의 해양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의 실체가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부산은 교육-연구-설계-기자재 제조-선박금융-선박 건조-수리-보급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 최고의 해사산업 사이클을 지닌 해양산업의 거점이 될 것이다.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