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화들의 열기가 여전히 뜨거운 듯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런 음악 영화 열풍의 정점을 기록했던 작품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엘튼 존의 이야기를 그린 ‘로켓맨’ 등도 곧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음악 영화에 대한 열기는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문득 ‘음악 영화라는 것은 어떤 영화를 지칭하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니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장르적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하기 더 난감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영화는 실제 존재했던 음악가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치는가 하면, 어떤 영화는 실존 인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반면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영화가 뮤지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 등의 어떤 장르적 특성이나 소재로 음악 영화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물론 음악 영화라고 하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음악들이 가장 먼저 와닿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항상 ‘청춘(靑春)’이라는 말이 먼저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청춘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보면 보통 ‘봄철’ 또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 등으로 해석되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영화의 배경이 봄철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십 대에서 이십 대 사이가 아님에도 이 단어는 이상하게 음악 영화라 불리는 영화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다. 보통 음악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음악으로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소통한다. 심지어 뮤지션이 아닌 주인공의 경우라도 그렇다. 그리고 그 소통의 응어리는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듯, 여름꽃이 만개하듯 무척 화려하다. 열정의 온도도 뜨겁다. 마치 무용수의 가장 극적인 몸짓처럼. 그래서 음악 영화를 볼 때면 인물의 나이와 시대를 넘어 매번 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의 언어들을 마주하는 것 같다. 이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관한 감흥의 기록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휘트니’는 고인이 된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음악 영화로 사람들에게 소개되었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기도 하다. 약물 중독으로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후반기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음악 애호가가 아니어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처음 이 영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나 알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에 대한 상투적인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겠지 라는 생각에 극장으로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너무 많은 감흥을 받은 나머지 지인들에게 이 영화를 볼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들 너머에 있는 그녀의 개인적 삶에 관한 이야기에 관해 다룬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실제 영상들을 통해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삶에 관해 관객들과 함께 다가가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생활을 추적하거나 엿보는 TV 프로그램들처럼 불편하거나 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삶이 그녀의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왜 그렇게 노래할 수 있었는지, 또 반대로 그 화려했던 음악 때문에 그녀가 삶 속에서 잃었던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왜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등에 대한 것을 관객과 함께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옆에는 항상 그녀의 가족과 음악에 대한 치열한 열정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함이 빚어낸 다양한 삶의 굴곡들과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이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그녀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가 무척 감동적이었던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삶의 가장 뜨거운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것 말이다. 우리의 나이가 실제로 사전적인 의미의 청춘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삶을 살아나가고 있고 우리의 심장이 여전히 뜨겁다면.
나는 우리에게 더 많은 그리고 더 좋은 음악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퀸의 음악을 전혀 알 수 없던 세대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의 음악과 영화에 빠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 퀸의 음악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는 얘기한다. ‘역시 퀸의 음악은 세대를 넘나드는 명곡 중의 명곡이었다’라고. 또 누군가는 ‘이런 음악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퀸의 오랜 팬으로서 그들의 위대한 곡들이 세대를 넘어 영원할 수 있는 것은 분명 그 음악을 함께 공감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 역시 영원하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원의 공감에 대한 연결고리에 우리 저마다의 다른 ‘청춘’이 분명 존재하리라.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