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꽤 오래된 문학인 모임이 있다. 1972년 생겨났는데 어느 시점에서 두 조각으로 나뉘어 지내기도 하다가 다시 하나가 된 이후 꾸준히 한길을 가는 아동문학인들의 모임이다.
모임이 오래된 만큼 구성원 중에는 고인이 된 분들도 있고, 연로한 분도 많다. 그런데 이 모임의 원로들은 좀 특별한 데가 있다. 동시를 쓰고 동화를 쓰면서 늘 아이들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주름이 겹겹 쌓여도 표정이 천진하다. 모임 행사를 마치고 가볍게 뒤풀이라도 하게 되면 풀피리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정감 넘치는 동요를 부르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이 모임은 해마다 신인상 공모전을 연다. 4월 한 달 동안 원고를 받고 심사를 한 후 6월 20일께에 시상식을 갖는다. 동시부문과 동화부문의 신인상 수상자 두 사람을 뽑는데, 경우에 따라 수상자가 없을 때도 있다. 올해는 양쪽 부문 신인이 다 나왔다.
신인 그러니까 새사람, 기존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새사람들의 등장은 언제나 신선하다. 시상식 날이면 더 큰 본상의 수상자들도 있건만, 신인상 수상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된다. 식이 끝날 무렵에야 듣게 되는 신인들의 수상 소감은 그날의 핵심 언어다.
신인상을 받는 사람은 기존 회원들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올해도 꽤 나이가 있는 분이 신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신인의 수상 소감에는 신인다운 독특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신인들의 소감에는 그들이 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가 분명하게 들어 있다. 신인들은 저마다 다른 그러나 순수하고도 본질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은 고갱이를 가지고 있다. 또 신인들은 자신이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데서 나오는 겸손함과 그 첫발을 떼도록 힘을 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첫 관문을 통과한 당당함도 장착한 상태이다. 당사자들은 몹시 긴장한 상태로 소감을 발표하면서 떨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보기에는 마냥 흐뭇하다.
나도 이 상을 받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금 속이 울렁거린다. 당선 통보를 받고도 한동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잘못 주어졌다는 연락이 올 것 같았다. 당선 통보와 시상식 사이의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빨리 상을 받고 빨리 그 상황을 종료하고 싶었다. 뭔가 붕 뜬 느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 즐겁다기보다는 불편한 느낌. 늦깎이 신인이어서 그런지 한동안 멀미 증상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긴장했으나 보는 이들은 아마도 흐뭇했을 것이다.
정말 내 것일까 싶은 귀한 구슬을 받아들고 조심스러워하던 신인 때의 마음은 어째서 유지되지 않고 사라져버리고 마는지 모르겠다. 각오를 다지던 단단한 마음의 근육은 어째서 느슨해져 버리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존재했고 그토록 생생했던 신인 때의 울렁거림은 여전히 떠오르는데 왜 겸손함과 감사함은 옅어지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면서도 왜 애쓰는 마음은 줄어드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글을 평가하는 잣대는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래서 모두 신인상 수상자들에게 호기심과 애정을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신인 시절을 되돌아보고 그때의 기분과 마음을 다시금 느껴보느라 숨소리마저 죽이고 집중해서 그들의 수상 소감을 듣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해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가 지났다. 이제 낮은 다시 야금야금 짧아진다. 여름 동안은 더위 때문에 짧아지는 해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다 문득 서늘한 바람이 불면 시간의 꽁무니를 따라 허둥거리기 쉽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워진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특히 정치인들이 많이 하는 식상한 말이지만, 초심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초심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초심을 지킬 것인가.
부산지역의 아동문학인들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럽다. 한 해의 절반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어김없이 신인들의 긴장된 당선 소감을 듣게 되니까. 때로는 울음이 섞이고 때로는 떨리는 음성으로 신인 시절의 그 마음을 돌아보게 해주니까.
문학인이든 정치인이든 그 누구이든 처음 가졌던 마음, 새사람의 마음으로 나머지 반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