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이던 1994년, 미국 뉴욕타임스에 재미난 특집기사가 실렸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벌어졌던 스파이전의 비화를 소개한 것이었다. 그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 이면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 내 암약 중이던 독일 첩보원들의 공로가 컸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즉, 영국 첩보기관이 10여 명의 독일 스파이를 일망타진한 후 이들을 대외에 알리거나 처벌하지 않고 회유해 역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중첩자로 만든 독일 스파이들에게 영국과 연합군의 주문에 따라 거짓정보를 베를린에 지속적으로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연합군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독일 전쟁지휘부는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지역에 주의를 덜 기울였고, 연합군은 1944년 6월 6일 이곳 기습상륙을 그만큼 수월하게 펼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연합군이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의 파드 칼레 또는 벨기에 쪽으로 상륙할 걸로 봤던 나치군의 허를 찔렀으니, 그럴 듯한 비화로 들린다. 사상 최대 상륙작전으로 2차대전의 판도를 바꾼 것인 만큼, 이런 스파이전 같은 에피소드도 많다. 연합군이 이 작전을 지칭한 ‘D-day(데이)’도 그렇다. 이는 군사용어를 넘어 어떤 계획이나 일을 실행하는 날이란 의미로 널리 쓰이게 됐다. 하지만 D의 어원을 놓고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 ‘별다른 뜻이 없다’는 참전 장교들의 반응 외에도 상륙(disembarkation)의 첫 글자라거나 1차대전 때인 1918년 미 육군 제1군의 야전명령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라는 주장도 나왔다.
D-데이 75주년인 어제,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던 미국 아이젠하워 장군이 D데이 하루 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돼 화제다. 그는 이 편지에서 상륙작전을 염두에 둔 듯 ‘수일간 일련의 여행을 갈 것’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썼다. 혹여 편지가 적군 수중에 들어가 작전계획이 누설되는 걸 피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올 만하다. 생전 그는 D-데이를 묻는 질문에 ‘모든 상륙작전은 출정일자(departed date)가 있으며 이를 줄임말로 D-day가 사용된다’고 답했다고 하니, 그의 말이 맞지 않을까 싶다.
그 뜻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세계 평화와 국가·민족을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 및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일이다. D-데이와 우리의 현충일이 겹치는 것도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하다. 현충일은 6·25전쟁과 관련이 깊어서다.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노르망디든 한반도이든 어디에서나 똑같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