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삭발은 단절을 의미한다고 한다. 출가할 때 머리를 깎는 것은 세속의 번뇌를 끊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곧 과거와 결별이자, 새로운 출발이다.
삭발도 속세에 나오면 세속화한다. 보통 사람들은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삭발한다. 운동선수의 삭발이 대표적이다. 신기하게도 삭발 후 성적이 반전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삭발 투혼이라고 부르며 행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흔하지 않지만 한때 고시공부나 고3 수험생 사이에서 삭발이 유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신력이 결과에 미치는 대단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전혀 근거 없는 행위는 아닐 듯하다. 또 삭발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행위로 애용된다.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민단체 학생운동권 등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삭발을 했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삭발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삭발에 대한 혐오 정서도 만만찮다. 여기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유교사상의 영향이 있을 법도 하다. 삭발은 했는데,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그것도 모양새가 우습다. 따라서 공인은 물론 개인도 삭발을 결정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청소년의 삭발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인식된다. 직장인 역시 삭발은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에도 삭발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곳이 정치권이다. 단식과 달리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작고,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강행에 반발한 자유한국당 의원 4명의 삭발이 대표적이다. 지역에서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유재중(수영) 의원이 성추문에 휩싸이자 삭발로 결백을 주장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단체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달 29일 황세영 시의회 의장과 함께 삭발을 했다. 이유는 현대중공업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본사의 울산 존치였다. 하지만 송 시장은 행보가 좀 꼬이는 형국이다.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에서 이전을 승인했고, 노조는 3일 총파업을 예고해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송 시장이 노사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입장인데도, 삭발로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문제는 삭발의 효과. 시장도 표로 당선된 정치인이란 측면에서 현대중공업 본사 이전을 지켜만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기업경영의 문제여서 시장의 역할에 한계는 분명하다. 삭발로 시각적인 효과는 얻었는데, 실리는 현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송 시장 행보가 주목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