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걷다가 겪은 낭패 사례다.
사례 1. 양산 물금 일대의 낙동강 자전거 도로. ‘고고씽’ 신나게 달리는 자전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순간 아찔했다. 물 위에 덱으로 조성된 자전거 길이라 조금만 더 세게 쳤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4대강 사업 때 조성된 낙동강 자전거 도로는 멋진 경관과 운치로 전국 라이더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주말이나 휴일엔 이용자가 꽤나 많이 있다. 걷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걷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다. 걷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건지….
사례 2. 동래 온천천 수변길. 온천천은 보행자·자전거 도로(보자도로)가 구분된 부산에서 몇 안 되는 모범 수변길이다. 기분 좋게 걷다가 장애물 때문에 잠깐 자전거 길로 들어간 게 사단이었다. 뒤에서 삼킬듯이 자전거를 타고 온 이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거 보소. 여가 자전거길인줄 모르능교!” 자전거 운전자는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에이 씨~”하고 욕설까지 퍼붓곤 표표히 사라졌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걷다 보면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우선도로,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를 무시로 만난다. 자전거를 만나면 보행자는 긴장하게 되고 때때로 주눅이 든다. 도로 위에는 ‘자동차>자전거>보행자’ 순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서열이 존재한다. 보행자와 자전거는 친구 같기만, 때때로 ‘웬쑤’가 되기도 한다.
이게 ‘보행혁신도시 부산’의 숨길 수 없는 현주소다. 사실 혁신이란 말이 무색하다. 보행정책을 펴면서 자전거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결과다. ‘보자 정책’이 따로 노는 사이 보행로 곳곳에선 갖가지 시비와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보면 자전거 사고로 인한 환자가 한 해 4만6600여 명으로 전체 교통사고자의 17%다.
부산의 자전거 도로 총연장은 434.48㎞(2018년 기준)이다. 이 중 전용이 48㎞, 보행자 겸용이 383㎞다. 88%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렇다할 ‘보자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난센스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지만 실제는 보행친화적이다. 보행친화도시는 걷기를 기본으로 대중교통과 자전거의 효율적인 연계를 품는 개념이다. 녹색도시나 슬로 시티로 가려면 자전거를 타지 않을 수 없다. 도시에서 ‘자탄풍(자전거 탄 풍경)’이 필요한 배경이다.
‘자탄풍’으로 성공한 사례는 곳곳에 있다. 서울시의 ‘따릉이’, 대전시의 ‘타슈’, 여수시의 ‘U-Bike’ 등은 나름 잘 달리는 공공자전거다. ‘자전거 특별시’를 꿈꾸는 창원에는 과속방지 알람 시스템이 장착된 신형 ‘누비자’가 시내를 누빈다.
유럽의 ‘자전거 전용 고속도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전거 전용 고속도로는 애당초 도시계획을 생태지향적 교통계획과 연계하여 수립해야 가능하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녹색참여소득’ 같은 대안도 주목할 만하다.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달에 수십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논란이야 따르겠지만 논의해볼 만한 의제다.
관점을 바꾸면 도시가 달리 보인다. ‘걷기+자전거’를 중심에 놓고 도시를 재설계하면, 지금과 다른 새로운 도시가 탄생한다. 이런 것이 혁신이다.
보행도시 부산은 갈 길이 멀다. 몇 개의 정책을 산발적으로 내놓고 ‘보행도시’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도시의 ‘자탄풍’은 포크 밴드의 이름처럼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보행도시를 위해 일단 두 가지라도 기억해두자.
‘자전거도 도로 위에선 차’라는 사실과, ‘예외로 자전거가 보도를 통행할 경우, 보도는 보행자 우선이다’는 판례다. 보행자도 알아야 대접 받는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행자들의 상호 배려다. 걷고 타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 교통강자와 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노약자와 젊은이가 함께 걷는 길은 배려뿐이다. 길 위의 평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