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간 120조 원을 투자해 건설할 반도체클러스터 부지로 경기도 용인을 선택했다. 448만 ㎡ 규모의 부지에 현재 주력제품인 D램과 차세대 반도체 제조공장 4개와 함께 국내외 50개 이상 부품 협력업체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거대한 사업의 경제적 파급력 때문에 청주 구미 천안 이천 등 주요 지역 도시들은 치열한 유치전에 뛰어 들었지만 용인이 결국 선택됐다. 용인은 유치전에 뛰어든 도시 중 서울에 가장 가깝다. SK하이닉스도 서울과의 지리적 근접성 이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보도자료에서도 용인을 선정한 첫 번째 이유로 “국내외 우수 인재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위치한 점”을 꼽았다. 이제부터 대한민국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는 지리적 경계는 경기도 용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의 도시들은 국가 균형발전의 원칙이 무너졌다고 반발했다. 중앙과 지방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지방 경제가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방분권과 자치를 헌법에 포함시키겠다고 표방해온 현 정부도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 앞에 속수무책이다.
사실 SK하이닉스가 신청한 부지는 수도권 인구 집중과 공장 신설을 제한하기 위해 지정된 ‘수도권 성장관리권역’에 포함돼 있었다. 부지 신청 한 달 후 국토교통부 장관 산하 수도권정비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통과시켰다. 부지 유치를 위한 경쟁 과정에서 경북 구미의 좌절은 더욱 컸다. 구미시는 SK하이닉스를 설득하기 위해 10년간 용지 30만 평 무상 임대, 2차 조성부지 70만 평 제공, 직원 사택·수영장·체육시설 공급 등을 유인책으로 내걸었다. 이번 부지 선정 결과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과 자치, 경제 발전 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기업의 공장을 유치해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발전을 이끌어간다는 전략은 더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낡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지역 스스로도 중앙과 지방 간의 구조적인 불균형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지방분권과 혁신 성장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신문은 부산시의회와 공동으로 지난달 7일부터 ‘부산을 적정도시로’라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했다. 적정도시는 ‘과잉 개발 계획으로 점철된 도시가 아닌,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맞춤형 도시’를 의미한다. 첫 기사에서 그동안 부산의 과잉 개발의 폐해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이제는 도시의 양적 발전이 아닌 질적 발전을 위한 맞춤형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인구, 주택, 공원, 그린벨트 등 부산지역의 주요 현안이 그동안 개발 중심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 모색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역의 주요 언론으로서 매우 적절한 기획이며, 단발성에 그치지 말고 향후 부산시와 시민단체 등과 협력하여 지속적인 지역 이슈로 끌고 가야 한다.
현대 도시의 발전과 혁신 분야의 석학인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와 도시 공동체에 대한 물리적 제약이 축소됨에 따라 도시와 국가의 성장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추동력은 창조성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주류 경제학의 관점은 기술이 경제 성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반면 플로리다 교수는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 이 세 가지로 구성된 T모델을 제시한다. 혁신은 기술 발명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인재를 조직·동원하는 과정이며, 도시 역할은 인재·기술을 흡입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때마침 기후변화와 도시발전 세미나에 참석한 텍사스주립대 패터슨 교수는 ‘부산은 사람과 안전보다는 돈과 자동차를 위한 도시인 것 같다’며 일침을 놓았다. 외부인의 시선과 진단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으로 하는 맞춤형 미래 적정도시 전략 수립에 시민, 언론 그리고 부산시가 서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