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도쿄 한복판에 ‘독도가 일본 땅’을 상징하는 영토 관련 선전 전시관을 개설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일선 학교에서의 독도 왜곡 교육체제는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정부의 홍보전도 적극 이뤄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등 가해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도 거리낌없이 시도되고 있다.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더욱 뚜렷해진 국가주의적 역사·영토관이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 북한 핵·미사일 위기와 이를 부채질하는 듯한 일본 정부의 대응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브레이크’ 없이 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는 뗄 수 없는 역사적 사실 관계로 인해 이런 보도를 직시할 때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암담함과 자괴감, 한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는 사실에 대한 부정을 보는 관점의 차이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황당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5·18 망언’ 관련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왜곡·비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망언’이 나온 것은 지난 8일이다. 이후 진화에 나선 나경원 원내대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는 발언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한국당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수 있는 정당”이라는 발언이 오히려 더 크게 불을 질렀다.
5·18민주화운동은 넓게 보면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부터, 좁게 보면 1980년 5월 18~27일 전두환 등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시민과 계엄군 모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광주민중항쟁, 광주민주항쟁, 광주사태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이날을 전후해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는 날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다음 해인 1981년 5월 18일 피해자 집단과 학생, 재야운동 세력이 망월묘역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한 것이 발단이었다. 국가는 이 추모행사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탄압을 가했으나, 5월 계승운동의 일환으로 꾸준하게 실행돼 마침내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이후로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의 공식 명칭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흐름에 따라 몇 차례 바뀌었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광주사태’, 노태우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김영삼 정부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되었다. 사건의 명칭에서 ‘광주’ 이름을 배제한 것은 5·18민주화운동이 지역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 속에서 이뤄진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민 혹은 민주화운동 단체나 학계에서는 ‘광주민중항쟁’ 또는 ‘5·18민중항쟁’이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된다. 현재 광주와 전남 일원에는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한 장소로 국립 5·18묘지, 5·18민주공원, 5·18자유공원을 비롯해 100여 개에 이르는 표지석, 안내표시판, 소공원이 조성됐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염원을 다지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평가에 의해 이미 정리되었던 사실이 정치적 수사와 몇몇 극우 보수의 프레임전쟁에 휘말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일부의 정치적 이해와 유불리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겠다.
일본 망언과 역사왜곡에서 우리는 배운다.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를 통해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일부의 이익이나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며 불분명한 용어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멈춰야 할 때인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신문을 비롯한 언론의 역할이 커야 하는 이유다.
이주민문화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