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물엿’이라고 했는데 업체 관계자는 굳이 ‘시럽’이라고 했다. 통영 꿀빵의 원조 격인 ‘오미사꿀빵’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꿀빵의 표면을 코팅한 것이 꿀이 아님을 강조했던 것이고, 업체 관계자는 꿀이 아님을 인정했던 것이다. 미묘하지만 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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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만들어진 통영 ‘오미사’의 꿀빵. |
현대인들의 종종 이런 강박에 사로잡히곤 한다. 꿀빵이 처음 등장했던 1950년대 말 혹은 1960년대 초로 거슬러 가보자. 숙성된 밀가루 반죽에 팥 앙금을 넣어 둥글게 빚고, 기름 솥에 넣어 튀겨낸 다음 시럽으로 코팅하고 깨를 뿌린다. 반들반들하고 반짝반짝한 표면에 점점이 박힌 하얀 깨가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갓 만든 꿀빵. 끼니조차 연명하기 힘든 시절에 그것은 얼마나 맛난 음식이었을까. 설탕이 귀한 물건으로 대접받으며 심지어 명절 선물로 주고받던 시절, 단맛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맛이었다. 그것이 꿀이든 물엿이든 초청이든 시럽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단맛은 곧 꿀맛이었다. 꿀이 아닌 줄 몰라서가 아니라 꿀처럼 단맛이라 ‘꿀빵’이라 불렀을 것이다.
‘오미사’ 관계자는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꿀이나 물엿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시럽’이라는 절충된 단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단맛 좀 구분할 줄 아는 시대를 산다고 해서 꿀빵을 굳이 ‘물엿빵’으로 부른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 오히려 어설픈 교조주의가 음식의 상징성에 생채기만 낼 따름이다. 대중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결과물은 그것이 비록 부정확하고 모순되더라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히려 부정확하고 모순된 것의 혐의를 벗기고 면죄부를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토리텔링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통영만 가면 꿀빵 때문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대로변에만 꿀빵 판매점이 족히 서른 곳이 넘었다. ‘대체 통영처럼 유서 깊은 항구도시가 꿀빵 따위로 왜 이 난리법석인가’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각 좀 달라졌다. 하나의 음식이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지속적인 경쟁이 필수요소다. 그리고 경쟁은 필연적으로 제품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견인한다.
통영 꿀빵에도 그 흔적이 조금씩 보인다. 통영의 명물인 욕지도 고구마로 앙금을 만드는가 하면, 커스터드크림이나 크림치즈를 넣은 꿀빵까지 등장했다. ‘오미사꿀빵’은 유지방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피를 더 얇게 만들고 175도에서 4분50초 동안 튀겨내는 최적의 공식을 찾아냈다. 그리고 앙금의 당도를 낮춰 현대인의 기호에 맞추는 등 원조다운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물엿이 아닌 진짜 꿀을 사용한 꿀빵’이라는 간판까지 목격했다. 경쟁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