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부산에서 지방권력을 교체한 오거돈 부산시장은 ‘동북아 해양도시 부산’을 슬로건으로 걸고 동북아 해양수도 건설을 제시했다. 이 슬로건은 오 시장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고 지난 20여 년간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포함한 부산의 모든 정치일정에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후보가 주장해온 정치 슬로건이었다. 그만큼 부산의 정치, 부산시민의 일상생활에서 해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996년 김영삼 정부에 의한 해양수산부의 출범도, 2008년 폐지되었다가 2013년 부활한 것도 모두 부산시민의 열망과 열정에 의한 결과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부산이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메카이면서 동북아 해양산업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경제적 지위와 해양산업에 대한 부산시민의 자부심이 어우러져서 생긴 현상이다.
2018년 발표한 부산의 해양산업 현황을 보면 해양산업 관련업체가 2만6408개, 매출액이 37조 원, 종사자가 15만 명에 이른다. 세계 6위 컨테이너 항만, 세계 2위의 환적항만, 전국 최대의 수산물거래시장을 기록하는 등 수치상으로도 부산은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추진해온 ‘해양수도’는 개념과 전략이 모호한 정치구호적 성격이 강했다. 한때는 ‘해양수도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했는데, 해양수도의 개념도 불명확하고 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도대체 해양수도 부산은 현재의 부산광역시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불명확했다. 당연히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또 폐지된 해수부의 부활을 부산시민이 나서 대선공약에 반영하고 성사시켰지만 국적선사를 보호하는 것도, 항만 경쟁을 둘러싼 지역 갈등의 조정 등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 중앙정부의 정책 부재를 노출했다.
1970,80년대에는 해양산업이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후 넘쳐나는 항만시설, 9003척(총톤수 1175만5211.51t)의 등록선박, 6만6736척의 등록어선 보유, 다양한 해양산업이 발달한 오늘날은 더 이상 중앙정부 중심의 해양행정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해양산업이 고도화하고 해양산업 종사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과 행정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현장 중심이 돼야 한다.
동삼혁신지구, 문현금융단지가 조성되어도 숙원인 대형 외항선사의 본사와 금융기관의 유치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해양정책의 수립과 행정 집행이 산업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해양의 개발·관리·운영에 대한 권한을 부산시가 직접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해양행정의 지방 이전에 대해 예산 문제, 중앙정부기관 간의 업무 협조, 대국회 업무 협조, 지역갈등 해소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미뤄지고 있지만 한진해운 사태, 지역 간 갈등해소의 실패는 물론 상당수 현안사업과 예산 문제를 지역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룰 논리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동안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이 총 3101건이 이뤄졌는데 이 중 해양사무의 지방이양은 122건에 불과해 매우 지지부진하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지방자치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도 해양행정 사무의 지방이양이 이처럼 부진한 것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발상을 달리하여 해양주권을 주민에게 돌려주고, 해당 지역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해양자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기왕이면 해양자치를 헌법상의 원칙으로 확립하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임된 부분에 대해서만 중앙정부가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을 적용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 제8장에 항만관리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고, 해양의 이용과 관련된 사무처리 권한을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도록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무역항과 연안항의 관리권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구분하고 있는 항만법의 원칙을 전면 개편해 항만관리권은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위탁하는 경우에 한해 중앙정부가 관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산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중심지다. 이 때문에 부산의 해양산업의 성패는 곧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헌법상 해양자치가 원칙으로 실현될 때 우리 해양산업의 능동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은 해양자치의 원년, 해양수도 부산을 실현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해양대 해사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