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올해 1호 정책으로 ‘사람 중심 보행도시’를 천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부산이 당면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웬 ‘보행친화도시’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한가하게 ‘걷기 좋은 부산’ 타령이나 할 때냐는 이야기겠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가뜩이나 교통이 불편한 부산에 이를 위한 투자는 못할망정 거꾸로 가겠다니 말이다. 그만큼 이 사안은 논쟁적 소재다. 총론적인 말인즉슨 옳지만, 각론과 구체적 실행에 들어서면 만만찮은 반발이 뒤따르는 탓이다. 그럼에도 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건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보행친화도시는 선진 주요 도시의 오래된 화두다. 세계적으로 도시 어젠다 중 하나가 차에서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더는 도로 건설만으로 교통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는 미세먼지 등 건강과 직결된 환경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서울 등 우리나라 주요 대도시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보행친화도시를 주요 정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느 도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부산시도 이런 흐름에 맞춰 여러 정책을 펴왔다. 2009년 허남식 전 시장이 ‘걷고싶은 도시 부산’을 선포하며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2014년 서병수 전 시장도 ‘보행친화도시 부산 원년’을 천명하고 다양한 보행환경 개선 정책 추진을 밝혔다. 성과도 적지 않았다. 해안 등을 잇는 갈맷길 구간이 부산의 명물로 탄생했고 상당수 테마길도 개발됐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결과에 만족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하다. 여전히 도심 대부분의 길은 차량이 우선이고 사람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부산시가 이번에 발표한 ‘사람 중심 보행도시’에 주목하는 건 그래서다. 시는 이를 위해 보행 연속성 확보, 보행 안전성 제고, 마실 가듯 편리한 생활 속 걷기 실현, 소풍 가듯 매력 있는 보행길 조성, 모두 다 함께하는 부산발 보행문화 확산 등 5대 추진전략 35개 과제를 제시했다. 4년 동안 총 1조837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다양한 전략과 엄청난 재원 투입 방침도 좋지만, 더 눈에 띄는 대목은 과거 보행정책에 대한 반성이다. 차량 중심의 교통체계는 여전했고, 정책에 걸맞게 예산이 투입되지 못하는 등 실행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올바른 진단이다.
하지만 진단이 올바르다고 보행친화도시가 거저 오는 건 결코 아니다. ‘사람 중심 보행도시’란 달리 말하면 자동차가 불편한 도시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차와 사람이 공존하는 도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선진국을 비롯해 국내 주요 도시의 지난 사례에서 보듯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구체적인 실행단계에서 번번이 차량 이용자 등의 반발에 부딪히는 까닭이다. 1조 원이 넘는 재원 투입보다 더 중요한 건 이처럼 곳곳에 잠복한 민원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장 최근에 불거진 문제만 보자. 부산 동구가 시행하려는 ‘수정동 보행환경개선사업’이 인근 상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보행로가 없는 탓에 사고 위험이 커 지장물 철거가 시급하지만, 상인들 입장에선 비용과 영업 타격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보행친화도시를 추진하는 대도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부산시가 내년부터 상습 교통혼잡 유발지에 부과하기 위해 여론 수렴에 들어가겠다는 혼잡통행료도 마찬가지다. 시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지만 차량 이용자의 적지 않은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과거 시 보행정책이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한 건 이 둘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행 의지가 부족했다는 시의 반성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민선 7기의 ‘사람 중심 보행도시’ 정책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고, 장기적이면서도 끈질겨야 한다. 보행 중심이란 건 관련 정책의 순위에 보행권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의미다. 말이 좋아 보행 중심이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형태의 반발에 맞서는 확고한 시정철학이 없으면 이루기 힘든 지난한 과제다.
지난 10년간 부산이 보행친화도시로 어느 정도 성장한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한계 또한 분명했다. 오거돈 시장의 ‘사람 중심 보행도시’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정책 의지에 더해 과감한 결단력이 필수다. 정책의 당위성을 분명히 제시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곳곳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들을 끝없이 설득하는 뚝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걷기 좋은 부산’이 결코 한가한 정책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진정한 보행친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