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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17 19:18:56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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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 수염이 긴 서양인 동상 2개가 있다. 흉상은 홋카이도대학 내에,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입상은 히쓰지가오카 전망대에 자리한다. 주인공은 ‘윌리엄 클라크 박사’(1826~1886)다. 머나먼 일본 땅에서 그의 방문 50주년이 되던 해에 흉상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는 입상을 세우게 했던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미국 매사추세츠 출신의 클라크 박사는 신학, 화학, 식물학을 섭렵한 학자이자 매사추세츠 농대(Massachusetts Agricultural College)를 세운 설립자였다. 그해가 1863년이었다. 산업혁명의 광풍이 몰아치던 미국 동부지역에서 그는 외로이 ‘농업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의 힘만으론 공업 위주의 지역 상황을 돌려놓을 순 없었다. 별다른 성과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일본 정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1877년부터 이듬해까지 8개월 동안 그는 삿포로에 머물렀다. 주 임무는 ‘삿포로농학교’를 건립하고 학교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당시 삿포로 인구가 2000명이 채 되지 않던 시기였으니, 삿포로농학교의 설립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대모험과도 같았다. 클라크 박사는 매사추세츠 농대의 교과과정을 그대로 가져와 미국 축산농장의 저장·생산 모델을 실험하며, 근대식 낙농시스템을 그곳에 정착시켰다. 당시 서양 문물 습득에 열정을 쏟고 있던 일본 정부는 빛의 속도로 클라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가 떠난 후 삿포로농학교는 홋카이도대학교로 발전했다. 140여 년이 지난 지금 홋카이도는 일본 낙농업의 중심지이자 농업 관련 신산업의 첨단지역이 되었다. 그 중심에 ‘삿포로농학교 제2농장’이 자리한다. 1877년에 조성된 2동과 연이어 지은 7동의 농장 건축물은 일본이 한창 개발시대를 달리고 있던 1969년에 국가중요문화재가 되었다. 그들은 그 시점에, 그것도 지어진 지 100년이 채 안 된 가축을 키우던 소 막사와 낙농 창고들을 왜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했을까. 홋카이도를 방문할 때마다 필자는 특별한 감정을 갖는다. 청정하다, 맛있다, 진정하다, 그리고 뭔지 모를 소박한 품격도 진하게 전해진다. 홋카이도는 강력한 지역성과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다. 자연과 한데 어우러진 농업과 관련된 성장 동력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홋카이도에 갈 때면 온전히 지킨 자연을 산업과 연결시키려는 그들의 도전과 선택이 유난히 부러웠다.

지역을 살려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줄기가 있다. 첫째는 큰 재원을 투입하여 대규모 변화를 통해 재생을 이뤄내는 방식이다. 효과는 빠르나 자기희생이 크고, 재원이 외부자본일 확률이 높다. 또 하나는 여느 지역이 흉내 낼 수 없는 지역성에 기반하여 변화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느릴 수밖에 없고 끈질긴 인내심이 수반돼야 재생이 이뤄진다. 지혜롭게도 홋카이도는 급격한 공업화와 개발시대 속에서도 꿋꿋이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나라는 원래 농업국가였다. 시대가 크게 변했다지만 지금도 국민의 삶은 농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농업 중심의 지역재생’이란 생경한 주제 앞에 서야 할 시간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아니 이미 들어 왔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환경오염과 유전자 변형이 심화되는 시대의 먹거리 생산은 국민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주제이기에 우린 이 생소한 주제에 특별히 집중해야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지역 생산을 테마로 한 농업 재생의 사례가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각종 특용작물, 참기름, 막걸리, 유제품, 허브 등. 농업의 폭을 조금 확장해보면 어묵이나 발효식품도 포함된다. 생산물 자체의 질 향상과 1차 가공과정에 창의성과 역발상을 더한 것들이다. 흥미롭게도 이끄는 주축들이 2세 중심의 계승자이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울산 울주군 언양 읍내를 방문했다. 명성을 얻고 있는 지역막걸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우연히 친환경 로컬유제품을 파는 가게를 만났다. 지역 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를 직접 가공해 만든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놀랍게도 목장의 2세이자 가게의 CEO가 젊은 여성이다. 홍보 팸플릿 겉면에 이렇게 적혀 있다. “가축을 키우고 원유를 생산하는 농업에서, 직접 가공하고 판매하는 농업, 더 나아가 즐기는 농업으로 차원을 높여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감동하고 공유하며, 다음 세대의 젊은 인재가 꿈을 품고 이어 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개발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나 해양수산부 장관이 천명해야 할 얘기가 아닌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막걸리가게와 우유가게 주인도 모두 젊었다. 농업을 신산업으로 바꿔가는 신농업장인들이 그곳에 있었다. 불고기로 기억되던 그곳이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젊은 농업장인! 그들은 험하고 변화무쌍한 이 시대를 과연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SNS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소통과 유통이 가능하기에, 교통 발달로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기에, IT기술과 접목된 다양한 농업기술이 창안될 수 있기에, 더 나아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에 닿는 유통 시간의 입체적 단축이 가능한 시대이기에 분명 그들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1878년 4월 클라크는 삿포로를 떠나면서 배웅하던 농학교 청년들에게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고 외쳤다. 그 젊은이들이 홋카이도의 농업을 일으켰고 일본 농업의 근간을 구축했다. 한 세기 전의 라이프 사이클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농업이 도시로 들어오고 있다. 가장 핵심의 미래 첨단산업이 바로 도시농업인 시대가 급하게 다가오고 있다. 젊은이들과 도시농업이 제대로 만나 불꽃이 튈 그곳은 환경운동과 생명보호의 현장이며, 로컬 푸드와 연계된 일자리의 창출지대이자 지역경제 공동체들이 공생하는 지속 가능한 실험장이 되어 줄 것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농업에 야망을 던질 수 있는 시대! 이 시대의 길을 크게 열어갈 우리의 클라크 박사는 어디에 있는가.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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