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셰비키’는 ‘다수파’, ‘멘셰비키’는 ‘소수파’라는 뜻의 러시아어다. 190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 당시 레닌파는 자신들을 볼셰비키라 칭하고 상대 파벌인 마르토프파는 멘셰비키라고 이름붙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르토프파가 다수였다. 스스로를 다수로 ‘명명’함으로써 레닌파가 실제로도 다수가 되는 데 성공했음을 이후 역사는 증명한다.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뜻하는 게 프레임이다. 대부분의 프레임은 용어의 선점 경쟁으로 나타나는데 정치판이야말로 대표적인 프레임 전쟁터다. 1987년 12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1노 3김’이 맞붙은 13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노태우는 ‘보통사람’이란 슬로건으로 군부 출신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당시 김영삼이 들고 나온 ‘군정종식’도 대통령 선거 사상 백미로 꼽힐만큼 잘 만든 슬로건이었지만 보통사람 아닌 보통사람에게 밀려버렸다.
‘프레임 이론’의 권위자인 미국 UC버클리대 조지 레이코프 교수에 따르면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활성시키는 사고 체계로 작동한다. 누군가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가 자신은 ‘MB 아바타’가 아니라는 의미로 ‘내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반문했지만 유권자들은 오히려 그를 ‘MB 아바타’라는 틀 속에서 생각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경제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해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푸념한 적이 있다.
최근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 대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양심은 헌법에 규정된 단어인데 이를 임의로 바꾸는 것은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법률 용어 여부를 떠나 일반 국민들이 떠올리는 ‘양심’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이며 일상적이다. 병역 불이행의 사유로 양심을 거론하는 자체가 논란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도 맞다. “군대 가는 이는 양심이 없어 가는 것이냐”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내면의 신념을 포괄적인 양심으로 표현하는데 불편해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병역 문제에 있어 ‘양심’을 ‘신앙’ 혹은 ‘신념’으로 바꾸는 일은 ‘하청업체’를 ‘협력업체’로, ‘불경기’를 ‘마이너스 성장’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게 비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