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의 저명한 시인 황정견(黃庭堅·1045~1105)은 자신의 문집 ‘산곡집(山谷集)’에 ‘사대부 식시오관(士大夫 食時五觀)’이란 글을 남기고 있다. 제목의 뜻을 쉽게 말하자면 ‘사대부들이 음식을 먹을 때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마음가짐’이다. 음식을 먹을 때의 법도가 ‘논어’와 ‘예기’ 등의 경전에 실려 있지만 사람들은 막상 음식을 앞에 두면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황정견 자신이 음식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을 약간 줄이고 고쳐서 이 글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필요한 부분을 요즘 말로 풀이해 보자.
첫째, 내 앞에 놓인 이 음식은 어디서 온 것이며 누가 만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아울러 요리를 한 사람의 노동도 잊지 말아야 할 터이다. 곧 누군가가 심어 가꾸고 거두고 빻고 씻고 끓여서 만든 것이다. 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은 열 사람이 수고한 결과물이다. 벼슬하는 사람에게 음식은 백성의 고혈(膏血)이기도 하다. 한편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여 만든 것이기도 하다.
둘째, 올바른 마음으로 음식을 먹을 만한 일을 충분히 했는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어버이를 섬기는 데 부족함이 없었는가,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가, 끝으로 사회적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는가를 살피라는 것이다. 만약 이 세 가지에 부족함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셋째, 음식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만 탐하는 것, 맛이 없고 거친 음식을 대하여 화를 내는 것, 어리석게 온종일 먹기만 하고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망각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넷째, 음식은 좋은 약이다.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몸의 병을 고칠 수 있다. 다섯 가지 곡식(쌀·수수·보리·조·콩)과 다섯 가지 나물(아욱·콩잎·염교·파·부추)로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어육(魚肉)으로는 노인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법이다. 몸이 수척하고 허약한 사람은 제대로 먹고 마시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수백 가지 병은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먹는 것을 약으로 여겨 건강을 지켜야 할 것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음식 먹는 것을 약 먹는 것처럼 여긴다.
다섯째, 늘 인격의 완성을 위한 노력을 해야만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 법이다. 공자는 “밥 한 끼를 먹는 그 짧은 시간에도 인(仁)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에 이런 생각을 먼저 둔 뒤에 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시경(詩經)’에 “군자는 한 일도 없이 녹봉만 받아먹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사대부 식시오관’은 결국 음식의 윤리학이다. 식욕은 성욕과 함께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강렬한 욕망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언제나 절제의 대상이 된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밥을 먹을 때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는다”(君子 食無求飽)고 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황정견의 ‘사대부 식시오관’은 이 말의 연장인 셈이기도 하다. 이 말은 공자나 황정견뿐 아니라 근대 이전의 사람이면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음식담론은 윤리의 문제를 깨끗이 제거해 버렸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오직 미식(美食)과 탐식(貪食), 폭식(暴食)을 중심으로 이뤄질 뿐이다. 음식담론 어디에도 절제의 윤리라고 할 것은 없다. 날마다 TV와 인터넷, 신문은 먹고 또 먹으라고 권유하고, 먹는 자가 행복하다고 설득한다. 음식에 대한 정보 역시 매일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 권유와 설득, 정보로 인해 나의 몸은 음식이 통과하는 장치, 식품산업의 이윤을 낳는 장치가 된 지 오래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미식과 탐식, 폭식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이 과도하게 충족될 경우, 개인이 건강을 잃는 것은 물론 환경 파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은 불필요한 자극으로 인해 깨어난 과잉의 욕망 위에 완강하게 축조돼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새해에는 황정견의 ‘사대부 식시오관’을 때로 읊조리며 살아볼까 한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