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망했던 길과 다르지 않게 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인사들이 최근 여권의 상황을 빗대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 발언이나 여당 내 주류 비주류 간 알력이 불거질 때부터 그런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 해이 사건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자신들과 판박이가 아니냐는 얘기가 본격 나오고 있다는 거다. 때마침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마당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내리막길로 치닫을 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물론 한국당 인사들의 이런 시선은 ‘너희라고 별반 다르겠느냐’는 다소의 조롱과 냉소가 섞인 데다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거기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들과 같은 길을 가기 바라는 바람(?)마저 어느 정도 담긴 듯하다. 그러나 스스로의 모습을 누구보다 뚜렷이 기억할 그들이기에 허투루 들을 일만은 아니다. 당장 2016년 총선 직전 때만 보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표실 벽면에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는 문구가 게시된 적이 있다. 숱한 헛발질을 반복하지 말자는 자성의 의미를 담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패였다. 한국당의 의도가 뭐든, 한 방에 훅 가본 경험자들 목소리니 예사롭지 않은 거다.
사실 이 대표의 ‘20년 집권’ 발언이나 여권 내 권력 다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대표의 발언에 자만심이 담긴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어느 정권이 장기집권을 꿈꾸지 않겠나. 주류 비주류 간 기싸움 또한 마찬가지다. 그게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법하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 역시 대부분의 정권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요컨대 이런 사안들이야 야권이 여권을 비판하면서 정략적으로 늘상 들먹이는 단골 소재 정도일 뿐이다.
그런 판에 청와대 직원들의 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경호처 5급 직원은 한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시민을 폭행하고 경찰에 연행돼서도 “내가 누군 줄 아느냐”고 행패를 부리다 입건됐다. 이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는 의전비서관은 음주운전이 적발돼 직권면직됐다. 그것도 모자라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일부 직원의 비리로 반원 전원이 교체되는 초유의 일마저 벌어졌다. 한국당이 큰 사고가 나기 전에 크고 작은 조짐이 나타나는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난다고 비난할 만하다.
청와대로선 하필 이럴 때 악재가 줄줄이 겹치느냐고 억울해 할 법도 하다. 실제 이전 정권에서도 청와대 직원의 비슷한 일탈 행위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때 윤창중 대변인이 대통령 방미 수행 도중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게 대표적이다. 이외에 기업 등으로부터 골프 등 접대나 상품권을 받고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하긴 국정 농단 사건을 볼 때 당시 청와대 곳곳이 문제였으니 박 정권은 더 입을 댈 필요도 없겠다. 앞선 이명박 정권 때나 노무현 정권 때도 성폭행 사건, 골프 접대, 국가 기밀 유출, 단순 폭행 사건 등 비위가 잇따랐다.
그러나 행여라도 청와대가 과거 정권의 사례를 들먹이며 물타기 하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청와대 직원의 잇단 비위 양상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앞선 두 사건과 달리 특감반 직원들이 연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점이다. 공무원 조직의 비위를 감찰해야 할 직원들이 되레 엉뚱한 짓을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연루된 특감반 직원도 다수다. 특히 정부가 적폐 청산을 소리 높여 외치는 마당에 정작 등잔 밑은 어두웠다. 이런 판국이니 새 정부의 개혁 정책은 급속히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이번 비위가 고작 새 정부 출범 2년도 안 된 초기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앞선 정권 청와대의 비위는 거의 집권 후반기에 발생했다. 이번 정부처럼 유독 청렴을 강조했던 노무현 청와대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권 말기라 해도 비난받을 일이 초기에, 그것도 한꺼번에 터졌으니 벌써 레임덕이 왔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게 결코 이상하지 않다. 여당에서조차 하인리히 법칙을 언급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게 괜한 엄살이 아니다.
경호처 직원의 음주 폭행,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사건 이후 임종석 비서실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 순간 사소한 잘못이 역사의 과오로 남을 수도 있다. 익숙함, 관성과 단호히 결별하라”고 주문했다. 옳은 반성문이지만 여기에 더해 특감반 사건까지 터지면서 일련의 비위가 단순히 ‘사소한 잘못’이 아니라 문 정부의 발목까지 잡을지도 모르게 됐다. 해외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보고받고 “믿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마냥 믿어주기에는 조짐들이 너무나 심상찮다. 한순간 훅 간 한국당이 자꾸 떠오르는 탓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