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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민주노총은 선배들의 눈물과 땀을 잊었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25 19:13:16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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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사회의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집단 중의 하나가 ‘노동운동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자체가 전태일의 희생,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물이 아닌가. 구사대에게 몽둥이질 당하고,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선배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과 피의 결실이 아닌가.

하지만 ‘꼰대노조’ ‘귀족노조’를 만들려는 게 전태일이나 미포조선소 크레인 고공 농성 노동자들의 꿈은 아니지 않았을까.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지금 노동운동의 추는 ‘기득권 노동자’의 보호보다는 국민 보편의 노동 접근권의 보장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주 수요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그냥저냥 끝났다. 정부가 추진하는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저지를 주요 쟁점으로 내세운 그 파업은 민노총의 주장으론 16만 명이, 정부 추산으론 9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그중에서 현대·기아차 노조의 조합원이 7만7000명이었다고 주장했다. 한두 개 대기업 노조원이 참가자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 전체 노동자가 참가한 ‘총파업’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겠지.

정부도 짐짓 대수롭잖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일부 보수언론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뻥 파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어쩌면 민주노총 지도부 스스로도 이번은 일종의 경고 파업 정도여서 자기네 실력(?)을 다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랄까,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노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고질적인 파업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조건반사적인 비난도 잇따랐다.

글쎄, 나는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노동조합이란 노동자의 권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주요 무기가 파업인 바에야. 노조더러 나라 경제 전체를 생각하라고 훈계하는 것도 옳은 말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노조는 노동자의 이익을 앞세워 투쟁하는 거고 나라 경제를 생각해 이익집단끼리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적절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곳은 정부가 아닌가.

나의 관심은 정작 민주노총이 파업을 벌인 것 자체보다는 지도부가 어떤 관점과 전략에서 이번 파업을 벌였을까 하는 데 있다. 이번 파업의 주 쟁점은 ‘탄력근로시간 확대 철회’이지만 민주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 철폐, 국민연금 개혁 등도 요구 사항으로 내놓았다. 하나 같이 노동자는 물론 국민 전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긴 하다. 이를테면, “ILO핵심협약은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 차원 문제인 데다 문 대통령이 공언한 사항인 만큼 이걸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그들의 주장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철폐나, 국민연금 개혁 요구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그들의 주장이 국민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은 건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엔 ‘탄력노동시간 확대 저지’ 같은 이슈는 국민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민 일반의 걱정은 한국경제가 어떻게 하면 세계적 불경기의 파고를 넘어서느냐, 그래서 행여 대량 감원으로 거리로 쫓겨나거나, 임금 삭감으로 가계가 파탄 나는 사태를 피하느냐는 데 쏠려 있지 않을까. 그래서 탄력근로시간 정도는 적절한 수준에서 재조정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일 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게 다 20년 전 ‘IMF 사태’가 가르쳐 준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라면 일단 노·사·정 협상으로 풀어보려고 해야지 무조건 참여를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게 정답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다. 민주노총의 진정성 문제 말이다. 비정규직 철폐나 일자리 늘리기는 우리 사회의 화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국민은 이런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는 성의가 민주노총에 과연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말하자면 파업 명분용으로 올려놓은, 잔치국수의 웃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없지도 않다.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현대차 노조의 극심한 반대와 상급기관인 민주노총의 어정쩡한 태도가 그 한 사례일 터다. 변변한 대기업이 없는 광주시가 그럴 듯한 제안을 내놓았다. 광주에다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연간 10만 대 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자, 임금을 완성차업계 평균임금의 절반 이하로 묶는 대신 광주시는 대신 주거·육아·여가생활비 등을 보전하겠다는 것. 이게 ‘한국형 고용창출’의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기대 어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현대·기아차가 이 제안에 솔깃해 광주시와 협상에 나섰는데, 노조가 반대하고 나섰다.

노조의 반대 명분이야 짐작하는 대로다. 임금을 절반 이하로 깎는 건 노동 착취다, 게다가 그동안 힘들게 싸워서 얻어낸 완성차업계에 대한 임금 삭감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운운. 노조로선 일견 있을 수 있는 반발이긴 하다. 하지만 내막을 뜯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지 않나. 지금 완성차업계의 평균연봉이 9000만 원을 상회한다는데 누가 뭐래도 초고임금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취업자는 3500만~4000만 원 정도의 초임에 각종 복지혜택을 ‘+α’로 받으니 현재의 고용시장에선 저임금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1만 개쯤의 일자리를 늘려 숨통을 틔우자는데 반대하고 나서니 광주 여론이 노조에 우호적일 리가 없는 거다. 이 마당에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고용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겠다”는 현대차 노조위원장의 발언은 또 뭘까. 젊은이들이 취업난으로 거리를 헤매건 말건 우리 밥그릇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명색 노조위원장의 입에서 ‘귀족노조라도 좋다,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소리가 나와도 되는 걸까. 그러니 국민이 고개를 돌리는 거다. 그리고 그 의구심은 상급기관인 민주노총을 향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가입자 수는 80만 명쯤 된다. 전체 노동자의 4% 수준에 불과하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전교조, 공무원노조가 조직의 토대다. 금속노조에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조가, 공공운수에서는 철도노조가 가장 강한 세력이다. 다시 말해 조직의 기반을 공공노조와 대기업 노조에 두고 있다. 한데, 지금 한국의 노동조합은 ‘대기업, 장년, 남성 중심’의 조직이다. 개수로는 전체 4%도 안 되는 대기업(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가 전체 조합원 수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자기네의 고임금과 사내 복지 지키기에만 혈안일 뿐 열악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의 연대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기네가 정년퇴직하고 나면 그 자리를 제 자식에게 넘기라고 백주대낮에 요구해 단체협상에서 관철시킨 사람들이 아닌가. 몇 년 전엔 같은 일을 하는 하청회사 직원이나 파견근로자들과는 같은 식당에서 밥도 먹지 않겠다, 내가 타는 통근버스에 태우지도 말라고 했대서 욕을 잔뜩 먹었는데 지금은 좀 고쳐졌나? 그러니 이들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꼰대 노조’가 아닌가.

민주노총이 이들 거대 노조의 ‘철밥통 지키기’ 방패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비판이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그러니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청와대 비서설장 임종석의 발언이나, “항상 폭력적인 방식을 쓴다, 대화로 뭐가 되지 않는다”는, 노동운동가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의 비판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거다. 민주노총도 이런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선지 2010년 이후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시늉을 넘어서서 진지하게 그걸 ‘조직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지금의 행태로 봐선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의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집단 중의 하나가 ‘노동운동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자체가 전태일의 희생,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물이 아닌가. 구사대에게 몽둥이질 당하고,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선배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과 피의 결실이 아닌가. 그러니 관찰자의 처지일망정 ‘민주노총’이란 조직에 일종의 외경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던 터다. 하지만 ‘꼰대노조’, ‘귀족노조’를 만들려는 게 전태일이나 미포조선소 크레인 고공 농성 노동자들의 꿈은 아니지 않았을까.

민주노총 안에서도 1980년대식 NL PD 같은 운동권적 분파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대기업 노조 조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민이 있음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나는 지금 노동운동의 추는 ‘기득권 노동자’의 보호보다는 국민 보편의 노동 접근권의 보장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1980년대식 ‘노동혁명’의 휘황한 이념이 사라진 진공에 ‘천박한 조합 이기주의’가 판쳐선 안 되는 거 아닌가. 파업도, 투쟁도 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는 ‘모든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걸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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