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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한반도 비핵화’ 탈출로 찾아내야 할 평양 정상회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9-16 19:01:01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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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리스트 신고-정전협정’ 빅딜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과 핵 관련 시설의 상세한 내역부터 내놓아야 정전협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태도이고, 북한은 정전협정이 먼저 이뤄져야 핵 능력을 까발리겠다는 거다. 북미가 이렇게 ‘밀당’을 벌이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아직도 크기 때문이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핵 리스트 신고-연내 종전회담’ 카드를 연동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핵 리스트 신고와 종전회담을 선후 관계로 놓기보다는 동시 이행하면 어떻겠느냐는 것. 북한의 불안을 고려해 우선 전체적인 비핵화 일정에 합의한 다음, 핵 신고는 몇 단계로 쪼개는 방안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내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만 이번이 세 번째다. 역대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쳐도 역시 세 번째.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남북 정상회담에도 적용된다고나 할까, 국민 관심이 이전보다는 덜한 느낌이다. 국민과 정치권의 시선은 지금 고용과 부동산대책 따위 경제문제에 붙들려 있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해야 할는지.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 방북의 의미가 작을 수는 없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으르렁거려 왔던 남북이 한 해에 세 번씩이나 정상회담을 여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그만큼 남북 사이가 가까워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평화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나쁠 리 만무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국민이 덤덤한 표정을 짓는 건 그만큼 남북대화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는 방증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평양으로 향하는 문 대통령의 걸음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다들 아는 대로 이번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교착상태에 놓인 비핵화 프로세서 협상일 터다. 경제를 비롯한 각 영역에서의 남북한 교류협력의 확대 방안도 물론 테이블에 오를 거다. 문제는 두 개의 현안 모두 풀어내기가 녹록지 않은 난제라는 데 있다.

지금 북한과 미국은 ‘핵 리스트 신고-정전협정’의 빅딜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지 않나.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과 핵 관련 시설의 상세한 내역부터 내놓아야 정전협정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태도이고, 북한은 정전협정이 먼저 이뤄져야 자신들의 핵 능력을 까발리겠다는 거다. 북미가 이렇게 ‘밀당’을 벌이는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아직도 거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북한이 선금만 챙기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물건 넘기는 걸 미루거나 불량품을 들이밀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반면, 북한으로선 핵무기가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유일한 상품인데 아무 담보도 없이 창고를 속속들이 열어 보일 순 없다는 것일 터.

북한은 이미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느냐, 이건 적어도 미래 핵을 포기한 게 아니냐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의 유해까지 보냈으니 인사를 닦을 만큼 닦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미국은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하고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고 불만인 모양이다.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핵시설 일부를 깨부쉈다지만 북한의 일방적 조치일 뿐 국제사찰단이 검증한 것도 아니니 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잠정 중단한 건 북한의 조치에 대한 보답이 아니고 뭐냐는 거다.

그러니 오월동주(吳越同舟)인 북미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는 셈. 지난 6월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공동선언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일이 순조롭게 풀리겠거니 했던 터다. 알고 보니 당시 진도가 생각보다는 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제도 잘 안 풀리는 터에 한반도 비핵화의 완수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선 속이 탔을 거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이달 초 특사단의 평양 파견이었던 것. 그들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조치 이행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 남한이 뒷받침해 주겠다고 설득했을 거다. 그래서 김정은으로부터 트럼프 임기 내에 비핵화를 완료하겠다는 약속과 주한미군 철수는 종전협정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언질도 받아냈다. 전자는 미국을 향한 김정은의 메시지이고, 후자는 국내 보수 세력의 불안 해소용이겠다.

이 두 개를 언턱거리 삼아 문 정권은 한편으론 미국을, 또 한편으론 국내 보수세력을 달래고 있다. 요즘 백악관 내의 중요 의사결정이 난맥상에 빠져 있는데 그 원인이 트럼프의 무지와 즉흥성 때문이라고 고발한 밥 우드워드의 저서에다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를 비판한 익명의 고위관리 편지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일단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새다. 그래서 중간선거 이전에 김정은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북미 협상의 디딤돌을 더 견고하게 놓는 데 공을 들이겠지. 관건은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받아들일 만한 카드를 제시하는 것. 내 생각에는 ‘핵리스트 신고-연내 종전회담’ 카드를 연동한 제안을 내놓을 것 같다. 핵 리스트 신고와 종전회담을 선후 관계로 놓기보다는 동시 이행하면 어떻겠느냐는 것. 북한의 불안을 고려해 우선 전체적인 비핵화 일정에 합의한 다음, 핵 신고는 몇 단계로 쪼개는 방안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북미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일 텐데, 우선은 트럼프-김 2차 회담이 성사되도록 중매쟁이 노릇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신뢰를 쌓아야 하는 건 북한과 미국만은 아니다. 남북 간 신뢰 구축도 핵심적인 의제다. 북은 과연 남이 끝까지 자신들의 경제적 후견인 노릇을 해 줄 것인가에 대해 아직은 완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사인한 공동경제개발 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의해 휴짓조각이 된 전력이 있으니까.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낼 핵심 조치야 미국의 체제보장이겠지만 경제개발 지원이란 당근도 그에 못지않은 조건이다. 전자가 미국의 몫이라면 후자는 아무래도 남한이 주로 떠안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청와대가 북한을 안심시킬 조치로 서두른 게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이었지만 야당의 반대로 방북 전 통과는 수포로 돌아갔다. 야당으로선 북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는 데다 비준에 덜렁 합의해 주면 앞으로 정부에 대한 견제수단이 마땅찮아진다는 걱정 때문이었겠다. 하지만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나무 위에 올라간 정부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자유한국당은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내년도 예산이 4712억 원이라고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걸 놓고도 시비를 걸고 있다. 향후 몇 년간 수십조 원이 들 건데도 그건 숨겨 놓고 달랑 내년도 소요분만 밝혀 놓고선 비준해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다. 일단 손가락 하나 들이밀어 놓고 슬금슬금 몸뚱이 전체를 우산 안에 밀어 넣겠다는 작전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내년 이후의 사업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판에 소요예산을 어떻게 추계하느냐는 정부의 항변이 틀린 것만은 아닌 성싶다.

나아가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을 보수세력의 전가의 보도인 ‘대북 퍼주기’ 프레임으로 몰아갈 일은 더욱 아니다. 대부분 철도, 도로 연결, 산림 재건과 관련된 예산이다. 이건 일종의 통일비용이기도 하고, 향후 우리의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아닌가. 정부는 비핵화가 완수돼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서방 자본이 몰려들 건데 그전에 북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쎄 북한이 블루오션이 될지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민간투자까지 포함해 수십조 원이 투자되는 걸 싸잡아서 ‘정부의 퍼주기’로 몰아갈 일은 아니잖나.

그렇다 쳐도 국회와 야당에 대한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대응 방식이 온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통령으로선 국회의장단, 여야 정당 대표와 함께 평양에 가면 김정은에게 체면도 서고, 대북 지원에 대한 간접적인 보증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 동행을 요청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들러리 서기 싫으니 안 가겠다는데 강요할 일은 아니지 않나. 듣기론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부터 문 대통령이 집요(?)하게 동행을 권유한 모양이다. 그 이후에도 야당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으면 깨끗이 단념하는 게 옳았다. 그런데도 임종석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동행을 요청해 논란을 일으키고 대통령이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 달라”고 공개 면박을 줄 일인가 싶다. 평안 감사도 제 싫다면 그만인데 굳이 야당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쨌거나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성과가 없다면, 당분간 비핵화 협상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할 거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선발투수에게서 공을 이어받아 게임을 책임진 다음 마무리투수에게 넘겨주는 구원투수 노릇을 잘 해낼 일이다. 야당도 대통령과 정부를 견제하더라도 마운드에 오른 대통령이 제대로 공을 던지도록 응원해주는 도량쯤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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