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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칼럼] 86세대와 세대교체론

올드 보이들의 복귀는 결국 세대교체 실패 탓

주도력 상실한 86세대, 시대적 책무 성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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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심코 정치뉴스를 보고 있자면 10년도 더 지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여야 정당 대표군의 면면을 보면 2018년 여름 한국 정치권은 분명 올드 보이들의 복귀 무대다. 이번 주말 전당대회를 치르는 더불어민주당에선 김진표(71) 이해찬(66) 의원이 당권을 놓고 경합 중이다. 송영길(55) 의원이 세대교체를 외치며 선전하고 있으나 힘이 달려 보인다. 민주평화당은 지난 5일 정동영(65)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바른비래당은 내달 2일 전당대회에서 손학규(71) 전 상임선대위원장을 대표로 추대할 것 같다. 보수의 몰락으로 벼랑 끝에 몰린 자유한국당에는 김병준(64) 비상대책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섰는데, 솔솔 홍준표(63)·김무성(66) 전 대표의 복귀설이 새어 나온다.

이런 풍경을 두고 “70대가 주축을 이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겨우 몇 년 ‘어린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고령화 사회의 실상을 감안하면, 이들 나이는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다. 생물학적 나이를 사회활동 적합성을 따지는 주요 척도로 보면 안 되는 건 물론이다. 더욱이 나이를 무색게 하는 건 이들의 화려한 경력이다. 김진표·이해찬 의원은 각각 참여정부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지냈다. 정동영 대표는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일부 장관에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선 후보였다. 손학규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를 거쳐 2007년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섰다.

이들이 정치권 전면에 다시 나선 것을 두고 개인적인 욕심이나 노욕으로 치부할 사안은 아니다. 앞으로 이룰지 모를 성취와 기대에도 너무 인색할 이유는 없다. 다만 자발적인 귀환이든, 정치적 필요에 의한 소환이든 개인적 평판을 떠나 정치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불길한 징후들을 짚어볼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 이들에겐 이미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 열정이 있었다면 그때 소진하는 게 옳았다. 그게 공인으로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최선의 보답이 아니었나 싶다. 10여 년 전에 장관부터 국무총리,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 이들이 이제 다시 이뤄낼 만한 시대적 가치나 희망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결국 올드 보이들의 귀환은 유독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정치권이 주기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뤄내지 못한 탓이 근본적이다. 그리고 지금 국면에선 주연무대에 나섰어야 할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86세대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들은 20년 전 386세대였고, 10년 전엔 486세대였다. 잘 알다시피 ‘386’은 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사회 주도세력처럼 부상했다. 국회만 보면 2004년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절반 이상 의석을 차지하면서 우상호·이인영·정청래·최재성 의원 등 12명이 대거 당선됐다. 소위 ‘탄돌이’의 등장이다. 제도 정치권의 86세대 평가는 엇갈린다. 학생운동시절에는 리더십을 발휘했으나, 정치권에 들어와서 범생이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운동과 정치’ 외에는 전문성을 쌓아본 경험이 없다는 말도 듣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86세대는 청와대 권력의 핵심부에 자리잡게 됐다.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이 그 범주다. 이들에게는 좀 더 신랄한 비판이 따른다. 민주화 투쟁과 희생이 배태한 도덕적 우월감을 꼬집는다. 여기에 배신감까지 부채질한 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다. 86세대 여권 대표 주자로 꼽혔던 그다. 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비록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사실상 낙마다. ‘민주주의 쟁취를 주장한 그들이 정작 스스로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은 결정타다. 한국당의 경우 50대 차세대 기수를 자처하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재선에 실패했다. 그나마 존재감을 유지하던 원희룡 제주지사와 정병국 의원은 당을 떠난 상태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안철수의 시행착오’도 세대교체라는 측면에선 불운한 사건이다.

1970년대 이후 30년을 끌어온 ‘3김 체제’, 또 3김이 만든 과점체제가 여전히 한국정치를 지배하기 때문에 86세대가 독자적인 레이스를 펼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권력의 세계에서 과거 세대가 그저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다. 신진세력이 낡은 세력을 밀어내는 게 세대교체의 본질이다. 세대교체를 갈구하는 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가치와 희망을 담아내는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86세대는 그 소임에 실패하고 있다. 민주화 투쟁의 도적적 우월감으로 정체성을 구축하고 엄혹한 시대를 버텨온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있는 내면 한 구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와 절실함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신진세력이 새로운 가치 구현에 실패하고, 새로운 리더가 성장하지 못해, 다시 올드 보이들의 재탕 경연장이 벌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미래로 전진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논설주간 jcp110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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