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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폭서(暴暑)와 피서(避暑)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16 18:51:5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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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불덩이 같은 햇볕이 쏟아진다. 너무 더우니 덥다 덥다, 하는 소리가 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늘을 찾아다녀도 그늘이 턱없이 부족하다. 바깥에서, 뜨거운 일광(日光) 아래에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겪는 더위는 더위 축에도 낄 수 없겠지만, 옛사람들은 어떻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더위를 피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다산 정약용이 말한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 소서팔사(消暑八事)를 말해주기도 한다. 소서팔사는 어떤 것인가. 소나무 아래서 활쏘기,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뛰기, 넓은 정자에서 투호하기, 시원한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에서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 듣기, 비 오는 날에 시 짓기, 달 밝은 밤에 냇가에서 발 담그기 등이 그것이다. 요즘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그러다 보면 더위를 저절로 잊게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밤낮없이 매미 소리도 끊이지 않고 쩌렁쩌렁 들려온다. 유강희 시인은 동시 ‘매미’에서 “나무를 안고/ 멀리 날고 싶어/ 밤낮 끙끙”이라고 써서 매미의 노심초사를 노래했다. 박용래 시인은 시 ‘참매미’에서 “어디선가/ 원목(原木) 켜는 소리// 석양(夕陽)에 원목(原木) 켜는 소리/ 같은/ 참매미/ 오동나무/ 잎새에나/ 스몄는가/ 골마루/ 끝에나/ 스몄는가/ 누님의/ 반짇고리/ 골무만 한/ 참매미”라고 써서 골무만큼이나 작은 매미에서 누님의 얼굴과 설움을 떠올렸다. 매미는 단연 여름의 상품(上品)이다.

이규보는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로 울고 있는 매미를 날아가도록 풀어주며 한 편의 산문을 썼는데, 그는 매미의 성품이 깨끗함에 있다고 보았다. “거미란 놈의 성질은 본래부터 욕심이 많고 매미란 놈은 욕심이 적고 자질이 깨끗하다. 항상 배가 부르기만을 바라는 거미의 욕구는 만족하기 어렵지만 이슬만 마시고도 만족해하는 저 매미를 두고 욕심이 있다 하겠는가.” 또한 매미에게 세세하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울창한 숲을 찾아서 가라. 그리고 깨끗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되 자주 나다니지 말라. 그렇다고 같은 곳에서만 너무 오래 있지는 말라.” 매미의 성품을 깨끗함으로 본 이규보와 동쪽 숲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음으로써 더위를 잠시 잊는다고 한 정약용은 모두 매미의 소리를 여름날의 상품(上品)으로 여긴 것 같다.

매일매일 폭염이 맹위를 떨치니 입맛이 잘 돌지 않는다. 냉면이나 콩국수, 막국수를 더러 먹거나 반찬의 수를 줄여 비교적 간단한 식사를 하게 된다. 시골집에서 먹던 물김치, 오이미역냉국, 가지무침, 호박잎쌈 같은 것이 절로 생각난다. 어머니께서 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직접 만든 손칼국수를 평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함께 먹던 여름날의 저녁도 생각난다. 마당에 모깃불을 놓던 기억도 새롭다. 아무것이나 먹을 수도 없고 하니 부엌에서는 식구들 식단을 짜는 일이 쉽지 않은 눈치다.

가끔 절에 가서 공양을 하거나, 사찰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사찰음식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지금의 시기는 스님들이 선방에서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하안거의 때이다. 하안거의 때에는 감자수제비나 국수, 찹쌀밥 등이 별식으로 나온다. 나도 절에 가서 한두 번 얻어먹어 본 후로는 그 맛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절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도 한다. 국수라는 말만 들어도 스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큼 이즈음에 즐겨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겠다.

절에서의 식사는 무엇보다 간소하다. 가령 성철 스님은 반찬으로 쑥갓 대여섯 줄기, 당근 다섯 조각, 검은 콩자반 한 숟가락 반을 드셨다고 한다. 여기에 감자와 당근을 썰어 끓인 국과 밥을 곁들여 한 끼의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게다가 아침 식사는 흰죽 반 그릇이 전부였다. 이렇게 무염식의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날마다 백팔 배를 하고, 선 체조를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냉수마찰을 하셨다고 하니 스님께서 건강을 오래 유지한 각별한 비결이 이러한 것들에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성철 스님은 여름날에 등나무 아래에서 쉬는 일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어쨌든 폭서에는 절에서의 소박하고 간략한 식사법을 따라 해 보는 것도 보탬이 있을 것 같다.

생각을 줄이는 것을 권고한 사람 가운데는 소동파가 있다. 소동파는 해남도 지역이 습기가 많고 땅에서 축축한 기운이 올라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썩지 않는 물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담담히 욕심을 없애고 육신의 존재 밖에서 노닐 수 있다면 쇠붙이를 녹여 내리는 더위도 어떻게 할 수 없게 된다”면서 잘 적응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살 것을 당부했다.

특히 스스로를 “아! 나는 천하에 생각이 없는 자다”라며 생각하지 않음에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생각을 적게 하게 되면 “비었지만 환하고, 한결같지만 통하고, 편안하지만 게으르지는 않고, 머물러 있지 않아도 고요하며, 술을 마시지 않고도 취하며, 눈을 감지 않아도 잠들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소동파가 말한 생각이란 갈애하고, 탐착하고, 분별하고, 스스로 분주하게 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겠지만, 마음의 상태 그것을 단출하게 하는 것 또한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길이라고 본 대목은 이색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소동파의 말과 글은 만해 한용운 시인이 쓴 “깊은 곳에 따로 사니/ 고요 속엔 집도 없네”라는 멋진 시구를 동시에 떠올리게도 한다.

차를 즐긴 사람들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한 도인은 여름날 차를 대접할 때에 물 주전자의 뚜껑으로 찻잎을 활용함으로써 차를 마시는 손님이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운치 있고 작은 이 배려에 의해 상대방은 찬 냉수를 한 그릇 들이켰을 때처럼 더운 기운을 밀쳐내며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끓는 가마솥과도 같이 유난히도 올해는 더위가 매서우니 더위를 피하는 법에 대해서 새삼스레 여럿의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곧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뜨거운 땅을 식게 하겠지만 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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