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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외교는 전쟁보다 어렵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31 18:49:1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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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간의 남북미 외교 롤러코스터! 언론은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공개서한에서 25일 북한의 답신 그리고 26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긴박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특히 지난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 발표의 파장은 컸다. 언론은 물론이고 여야 정치인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모두 서둘러 회담 취소의 파장이 자신들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그것을 6월 지방선거의 유불리에 바로 연계하는 일부 정치인의 언행은 부박하기 짝이 없었다. 정치·외교 이슈들을 대중에게 해설해주는 정치평론가들도 그것이 외교 전략적 요소이거나 협상 게임의 한 단계일 것이라고 바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 22일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때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북미 회담 취소 가능성을 넌지시 비췄을 때 그런 게임의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외교는 ‘협상의 비수’를 감춘 전쟁이다. 실제 전쟁에서는 총칼을 대놓고 휘두른다. 반면 외교는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폭력적 해결을 제외한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도모하는 일이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므로 외교는 치열하고 치밀하며 교활한 게임이기도 하다. 거래의 기술에 관한 책까지 썼고 “미친 듯이 협상”하기를 좋아한다는 트럼프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이상의 위정자라면 국가의 외교를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려고 하며 그렇게 할 것이다.

외교에서 교활함은 미덕이다. 마키아벨리즘은 국내정치보다 국제정치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악마의 저서라고까지 비난받았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그중에서도 제18장은 유명하다. 군주에게 ‘교활함의 대가’가 되라고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읽어보면 상당 부분은 구속력이 있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국제관계와 외교적 맥락에서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교활한 기만책을 써서 “사람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데에 능숙해야”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18장에는 저 유명한 ‘사자와 여우’의 은유도 나온다. 사자는 힘이 세지만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꾀가 많지만 늑대를 물리칠 수 없다. 따라서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혼내주려면 사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비유이다. 마키아벨리는 단순히 사자의 방식만으로는 분쟁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여우의 방식을 모방하는 법을 잘 알아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데, 나아가 이 같은 여우의 기질 또한 잘 위장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는 ‘위장과 은폐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이는 특히 국제관계에서 교활한 군주가 갖추어야 할 핵심 기술이다. 상대의 교활함은 투명하게 직시하고 있어야 하지만, 나의 교활함은 철저히 위장·은폐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다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잠시 생각해보자. 개인적 차원에서는 악덕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미덕으로 권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는 ‘집단이기주의가 허용되는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집단이기주의를 적극 내세우며 그 성과가 찬양받는 공동체 단위가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국가 이하의 공동체 단위의 집단이기주의는 허용되지 않으며 그것을 내세우면 비판받고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한 가족이 자기 이익만 챙기기 위해 똘똘 뭉쳐 이웃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 한 동네가 자기 이익만 챙기면 시·군 단위에서는 비난받는다. 하나의 도시가 집단이기주의를 내세우면 나라의 차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며 경우에 따라 법적 제재를 가한다. 국가 이하의 공동체 단위에서 집단이기주의는 악덕이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이익은 무시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이익을 성취하면 국민으로부터 박수 받는다. 개인의 이기심과 하위 집단의 이기주의가 국가 단위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적어도 현재까지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특성이다. 현재의 국가 개념이 지속하는 한 그럴 것이다. 물론 인류가 더 나은 지구 공동체를 발전시키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그래서 외교는 어렵다. 전쟁보다 더 어렵다.

한반도 정세로 돌아와 보자. 남북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도식적이지만 항상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해왔다. 하나는 힘의 균형에 의한 현상 유지이다. 소위 ‘냉전 구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잠재적일지라도 전쟁을 전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평화 협상의 시도이다. 이것은 전쟁을 배제한 접근법이다. 하지만 협상이 언제든 파행을 맞을 수 있는 위험부담을 지고 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선악의 문제나 정의실현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부터 ‘전장’에 나갈 각오가 되어 있고 또한 필요하면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는 끈질기게 협상의 지난한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협상의 롤러코스터는 상존한다. 어제의 문제 해결이 오늘의 난제 발생을 가져오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또한 한 번 시작한 평화 협상은 중도에 그만두면 아니함만 못하다. 외교와 협상은 전쟁과 전투보다 어렵다.

협상에서의 신의는 언제 배반당할지 모른다. 국제관계에서 신의는 서로 상대를 믿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믿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선의(善意)를 믿는 것도 아니다. 국가 사이의 신의란 ‘이해관계의 상호인정과 이익의 합리적 배분’에 근거한다. 상대가 어떤 이해관계에 집착하는지 간파해야 한다. 각 나라가 서로의 이익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형평의 지점을 찾아낼 때, 지속할 수 있는 ‘신의’가 형성된다.

현재 한반도는 각 나라의 외교적 능력의 시험대가 되었다. 호기이기도 하다. 다만 외교는 전쟁보다 어렵다는 것을 명심하고 실천할 때, 호기가 다시 위기로 바뀌지 않고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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