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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추억을 만나러 가는 길 /나여경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4-10 19:18:3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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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만나러 가는 길,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가 혓바닥 같은 벚꽃 잎이 도로 위를 뒹굴었다. 이내 내린 비가 도로를 꽃잎으로 포장했다. 절정일 때 지고 마는 초연함이 환상적인 계절 이미지로 남는가. 그래도… 꽃길을 걸으며 남는 아쉬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올라가 만난 갤러리수정은 이름만큼 예쁘지 않았다. 길눈 어두운 나는 낡은 건물을 돌고 돌아 겨우 출입구를 찾았는데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와 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한층 더 호러 영화 속 분위기를 연상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지어진 수정 아파트 4층 한 호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찾은 갤러리에는 추억 앨범의 봄 나들이전이 열리고 있었다. 수정동 주민들의 장롱 속에서 겨우내 잠을 자던 오래된 사진들이 봄나들이를 나온 추억 전시회였다.

어두운 외관과 달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실내는 소담하고 아늑했다. 1950, 1960년대 사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기록 사진의 힘을 느껴보고 싶었다는 기획 의도에 걸맞은 사진들이었다. 벌거벗은 채 해수욕을 즐기는 꼬마들, 초등학교 입학식인 듯 온 가족이 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 소풍과 졸업 사진, 양 갈래로 땋은 머리, 흰색저고리 검정치마 입은 여성들의 사진과 군대 시절 남성들의 사진, 초례청의 결혼식 사진, 한껏 모양을 낸 양산 든 나들이 사진, 멋진 식당에 가서 한 끼 밥을 먹거나 이벤트를 치르는 요즘과는 다르게 생일을 기념해 특별히 찍은 사진도 있었다. 사진은 순서 없이 진열돼 있었지만 하나하나 연결해 보면 나고 자란 한 인간의 개인사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일대기 같은 장면들이었다.

이런 개인사를 간직한 사진들 외에도 1950년대 부산의 장소를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부산세관,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부산역, 부산우체국, 부산상공회의소, 초량시장, 광복로, 텍사스촌 입구, 서면 복개천의 모습 등이었다. 사진 아래 현재의 모습을 덧붙여 놓아 달라진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산복도로에 위치한 오래된 수정아파트에 갤러리를 차릴 생각을 한 이의 문화적 마인드가 힘을 받아 수정아파트 전체가 각각의 개성을 살린 갤러리로 환골탈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한국전쟁, 8·15해방 등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복도로는 역사성을 살린 문화적 공간으로 재단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한 곳은 단지 이곳 뿐은 아니다. 부산 동구 좌천동의 매축지 마을은 마구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골목, 흙집, 보리밥집의 30년 된 로즈마리 나무, 영화 친구 촬영지, 보림연탄지소 등이 전국 최초 ‘마을문화재’로 선정됐으며 부산 영도구 대평동 깡깡이 마을은 최백호의 신곡 ‘1950 대평동’ 스카웨이커스의 ‘깡깡 30세’가 주제곡으로 선정되고 주민과 예술가의 협업 덕에 깡깡이 예술마을로 재탄생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인 공동묘지에 천막을 치고 집을 만들어 기거했던 아미동 비석마을은 임시수도기념관과 동아대 석당박물관 등을 연계한 ‘1023 피란수도 흔적길’ 조성사업이 조성됐으며 서면은 부산 신발공장의 역사를 따라 ‘근대산업유산 추억길’이 개설돼 스토리텔링과 결합된 도보 여행의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일의 근간에는 언론의 힘이 지대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추진시키고 시정을 요구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그런데 이왕 하는 일 잘했으면 좋겠다. 조사에 따르면 부산발 관광객은 느는데 부산행 관광객은 줄고 있다고 한다. 서울이나 대구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부산만의 특징을 살린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자연의 반대말은 문화다. 초연함도, 같은 듯 다른 계절을 되풀이하는 능청스러움도 어느 것 하나 자연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는 문화를 만들며 산다. 그 문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떨어져서는 안 되며 하나로 연결될 때 참다운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 문화를 창조하는 데 꼭 기록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판단하는 혜안을 갖춘 국제신문으로 우뚝 서 좋은 안내자가 돼 주길 기원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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