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도 전 부산 북구청장은 민선 자치단체장 중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부산시의회 부의장 출신인 그는 2002년부터 딱 4년만 구청장을 지냈다. 2006년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공천에서 제외되자 그의 꼿꼿한 성격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재임 기간 중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의 민원을 제대로 안 들어 주다 보니 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당시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가진 덕에 무소속 출마설도 나왔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동생이 원장 신부로 있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오순절 평화의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보호시설 원생들을 상대로 봉사 활동을 펼쳤다. 부산대 약대를 졸업해 오랫동안 동네 약국을 경영했던 그가 퇴임 후 구상했던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관용차 사용을 일절 하지 않았다. 퇴직 때는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 모은 1100만 원으로 쌀을 구입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퇴임 후에도 관행적으로 지역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직 단체장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는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그는 지금도 북구지역 내 한 병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북구는 정치적으로 보면 여러 정파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지만 ‘아름다운 퇴장’을 한 배 전 구청장을 ‘지역 어른’으로 대접한다.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의 연임이 3선까지 가능하다. 3선을 다 채우면 12년이다. 요즘처럼 주변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 인물에게 특정 지역의 운명을 12년이나 맡긴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일 수 있다. 사심 없는 뛰어난 능력의 리더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역 대결 구도의 틀 속에서 운 좋게 3선 연임을 했다면 해당 지역 주민에겐 불행한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부산은 유독 3선 단체장이 많다. 올 6월 말 임기를 마치는 16개 구·군 중 절반에 가까운 무려 7명이 3선으로 물러난다. 이들 중 일부는 퇴진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이들은 ‘한나라당(새누리당)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호시절에 선거를 치렀다. 특히 2010년 6·2 지방선거 때 이들 중 일부는 상대 당이 후보를 내지 못해 무투표 당선되는 행운까지 누렸다. 부산에서는 이들에 이어 올 6·13지방선거에서도 3선에 도전하는 이가 5명이나 된다. 역시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현행 3선 단체장제가 지방자치와 분권에 득이냐 실이냐는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다. 다만, 후진적인 정치 환경 속에서 3선 연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지역에 해악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 시스템상 한 번 단체장이 되면 당 내부에서 별도의 건설적인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재선, 3선을 순리로 여기는 악습이 고착화된다. 동시에 오만과 독선이 자치단체장 주변에 자리 잡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공자는 논어에서 용지즉행(用之則行) 사지즉장(舍之則藏)이라 했다. 세상에 쓰인다면 실력을 발휘하고 버려지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물러난다는 뜻이다. 세상이 자신을 필요하면 최선을 다해 그 사명을 다하는 용지즉행의 자세가 요구된다. 세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자리에 연연해하지 말고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공직자의 경우 용지즉행과 사지즉장은 새겨들어야 할 철학이다.
유감스럽지만 6월 지방선거를 4개월가량 앞두고 부산지역 현직 자치단체장의 용퇴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모두 자신들이 아직 세상에 쓰임새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껍데기뿐인 제2 도시로서의 상황은 고사 직전인데도 말이다. 인구 급감으로 인한 지자체의 소멸 위험도를 보여주는 ‘소멸 위험 지수’(2016년)를 보면 부산은 8대 특별·광역시 중에 가장 낮은 ‘위험’ 신호를 나타낸다. 그중에서도 원도심 일부 자치구 등은 대도시 지역 기초자치단체 중에선 처음으로 0.5 이하인 인구소멸 단계로 진입했다. 획기적인 리더십의 변화가 없으면 해당 자치구의 침몰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경남에서는 재선인 하창환 합천군수(한국당)가 지난해 12월 1일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해 박수를 받았다. 합천은 보수 정당에는 아직 천당과 같은 지역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65%를 얻은 지역이다. 하 군수도 4년 전 재선 당시 7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런데 쿨하게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불출마 소회로 고은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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