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3월, 서울의 한 중학교가 입학식 식순에 국민의례를 넣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기독교 재단인 이 학교 측이 밝힌 사유는 우상숭배를 금지한 십계명에 어긋난다는 것. 재단이 소속한 교파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언론은 학교 측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종교적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에 대한 예의가 우선한다는 잣대를 그 근거로 삼았다. 독재정권이 표방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탓이었다. 국가주의 광풍 아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중략)/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에서 그 시절의 경직된 세태를 고발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중략)/“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아니다 아니다!” 하고 따라서 읽는다’. 김명수 시인은 ‘하급반 교과서’라는 시에서 국가주의에 세뇌된 씁쓸한 일상의 단면을 풍자하기도 했다.
국민의례에 얽힌 국가주의는 독재정권 시절에만 횡행했던 과거지사가 아니다. 탄핵정국이었던 올 1월 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난데없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외에 묵념 대상자를 임의로 추가할 수 없도록 국민의례 관련 대통령훈령을 개정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식행사에서 5.18 등 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슬픔까지 획일화한다” “국민을 통제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 때문에 문재인 정부 들어 아예 국민의례 권고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등 행사에서 지금도 여전히 습관처럼 국민의례가 행해지고 있어 논란은 잠재된 상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프로풋볼 선수들 간에 벌어진 국민의례 갈등이 이 논란을 되돌아보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국가 연주 도중 선수가 무릎을 꿇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라고 프로풋볼 사무국에 요구했다. 앞서 그가 소수 인종 차별에 반발해 그런 행위를 한 프로풋볼 선수의 퇴출을 주장한데 대한 저항이 확산되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의 드넓은 오지랖에서 망령이 아닌 서슬 퍼런 국가주의 폭력을 목격한다. 인권은 바람 앞의 촛불인 듯하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