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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생각의 단절’이 회복되고 있는 인민들

대화는 들어줄 이가 있어야 하나 북한은 1인 독단의 왕조

외국서 활동하는 북한 ‘금수저’들이 열쇠가 될 수도 있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9-07 19:01:2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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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상대가 전제조건이다. 상대가 없거나, 있더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 귀에 열심히 대화를 청하는 것은 그저 독백일 뿐이다. 그래도 기어이 대화를 하겠다면 상대가 돌아보고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백가쟁명이 난무하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 김정은이 원하는 첫 번째는 미국과의 직거래다.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보유국으로 협상테이블에 앉아 정권의 안전과 불가침을 보장받으려는 목적이다. 두 번째는 미국이 개입할 수 없는 여건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집어삼키는 통일이다. 모두 아는 바이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다.

벼랑 끝 전술을 밀어붙이는 바탕도 단순하게 보면 두 가지다. 먼저는 미국의 아시아 개입이 못마땅한 중국이 뒷배로 있는 한 미국은 섣불리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 또 하나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대한민국과의 체제경쟁은 불가능한 데다, 지금껏 체제를 유지해온 밑천인 김씨 왕조의 거짓 신화가 들통 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이 무력을 사용할지 단언할 수 없으나 김씨 왕조의 위기는 분명하다.

마침내 거머쥔 목적을 위한 수단 확보. 언제나 과시뿐인 미국의 무력(위험한 착각일 수 있지만). 이제 거짓 신화의 왕조 유지에 나서야 할 차례이다. 역시 단순하다. 핵으로 위협하며 군사적 도발을 감행해 적화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민족전쟁, 혹은 내전이라며 미군의 철수를 막지 않겠다면 뜻대로 되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하여 망설이는 남쪽 지도부, 응전과 평화로 갈라선 국론. 전국이 사통팔달로 쭉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그들의 탱크와 장갑차가 마구 달린다면….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기반을 온전히 차지하게 된다. 전쟁 과정에서 다소 파괴는 있겠지만 날로 먹는데 그쯤이야. 다음은 ‘남조선 것 중 말 많은 것들을 먼저 쓸어버리고’ 외친다. 그동안 갖은 고난을 겪은 북조선 왕조의 인민(사실은 신민)들이여, 위대한 김씨 왕조가 기어이 너희를 남조선 노예의 주인으로 만들었노라! 조금 눈을 뜨고 귀가 열리기는 했지만 하루아침의 횡재에 어찌 ‘수령님 만세!’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아니 외치겠는가. 눈앞의 그 같은 환상에 취해있는데 ‘대화’라니, 그야말로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북조선 경제를 살려준다고? 흥, 그까짓 푼돈. 이제 통째로 먹을 텐데.

대화를 하려면 대화에 나올 여건부터 만들어야 한다. 아이고, 날로 먹기는 틀렸구나. 우리만 핵을 가진 것이 아니구나. 게다가 저들의 공격능력은 더 뛰어나구나. 에구, 굶주린 인민들의 죽기 살기 각오보다 더 무서운 굳은 의지라니! 하는 여건이라야 진짜 대화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방 뛰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들의 뒤에서 연일 애걸하는 대화 요청은 더욱 얕잡아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20년 전쯤 취재를 위해 찾아간 옌지(延吉)에서 막 두만강을 건너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다. 오직 굶주림 해결이 목적이었으니 눈앞에 남조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사색이 되는 그와 겨우 말문을 텄을 때, 먼저 임수경을 아는지 물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임수경은 구속되었지만 그의 부모는 여전히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도 아는지 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잠실에서 열린 남북축구대회 취재차 내려온 북측 기자들이 임수경의 집을 방문해 취재한 적이 있었고, 평양에서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통일의 꽃이 아닙네까’가 답이었다.

다시 만약 김일성대학교 학생이 당(黨)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남한을 방문했어도 그랬을지 물었더니 단박에 가족 모두가 죽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갔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이유를 따져보면 그 또한 북한판 ‘통일의 꽃’이 되는 셈인데? 물었더니, ‘그딴 일은 인민은 알 수도 없습네다’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그런 모든 사실이 보도되고 가족은 북한 기자와도 자유롭게 만나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그 사람, 멍한 표정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앞에 또렷한 무엇이 있어도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없는 세뇌 교육에 의한 ‘생각의 단절’, 그것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참혹함 속에서도 왕조체제를 지킬 수 있었던 근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어렴풋하나마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장마당을 통해 개인의 소유도 생겼다. 부모가 자식이라면 목숨을 거는 것과 같이 사람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기면 강해지기 마련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왕조의 친위세력들은 부정이든 부패이든 더욱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무역일꾼들은 대부분 왕조의 친위세력 신분으로 그야말로 북한판 ‘금수저’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안절부절못할 때는 함께 있던 자녀나 가족에 대한 소환령이다. 너도 믿을 수 없어 인질로 삼겠다는 뜻이기에 말이다. 기막힌 현실이지만 어쩌면 거기에 이 모든 문제를 풀 열쇠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통일은 좀 뒤로 미루고 당장은 유엔에 가입한 각각의 나라로서 대화하자는 제안. 그것은 위기가 닥쳤을 때 자폭에 나설 수 있는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니 위험을 훨씬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전제는 김씨 왕조의 대를 끊는 것이다. 다행히 가계(家系)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 데다 단 한 명이면 끊어질, 1인 독단의 왕조 아닌가. 열쇠로 문부터 열고 제대로 대화를 시작하는 지략과 용기가 필요하다. 대화의 환상병부터 고쳐야 가능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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