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희봉 칼럼] 역사의 거울, 우리말

말의 뿌리 밝히는 건 역사 바로잡는 지름길

가야사서 더 나아가 아시아로 시야 넓혀야 우리의 본 모습 보인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태초에 바다의 여신 남무가 있었다. 그녀에게서 하늘과 땅이 합쳐진 안키가 생겨났다. 안키는 대기의 신 엔릴을 낳았다. 창조주 엔키는 식물, 동물, 새, 물고기를 만들었다. 엔키는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를 시켜 진흙을 가지고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른바 수메르의 창조신화로 점토판 문서로 새겨진 ‘에리두 창세기’이다.

기원전 3000년 이전, 메소포타미아에 수메르 문명이 있었다. 그 문명은 점토판에 새겨진 문자가 발굴됨으로써 증명됐다. 남자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여자, 이상향 딜문과 사과, 뱀 이야기, 메소포타미아 홍수 이야기를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 지구라트 탑과 인간의 언어분열을 담은 엔메르카르 서사시…. 이집트, 그리스, 히브리 등 인류 문명의 원형이 다 담겨 있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는 새뮤얼 크레이그의 말이 헛말이 아니다.

숱한 이야기 중에 눈에 띄는 건 ‘검은 머리의 사람들’. 씨름과 상투 문화도 확 끌린다. 수메르문명은 기원전 3000년 경부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인류 문화의 시원에다 설형문자, 법전, 녹로, 수레 등 문명의 시초를 장식했다. 그들의 언어 구조는 신기하다. 문장에 토씨를 사용하는 교착어. 중국과 다르고 인도말, 우리말과 같다. 수메르어와 남인도의 인도말, 우리말은 상당히 닮아 있다. 어떻게 된 걸까.

몽골어와 우리말의 근친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의 거서간이나 마립간, 고구려의 막리지 등은 몽골 말과 거의 같다. 고려 때 원나라 침공 이후 몽골어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아기, 아가씨, 마누라, 마마, 무수리, 사돈 등 호칭은 물론 수라, 설렁탕 등 음식 문화에도 남아 있다. 벼슬아치, 장사치, 반빗아치 등 직업인을 일컫는 말은 수두룩하다. 부산의 자갈치도 몽골어에서 왔는데 어부를 뜻한다고 한다.

영어는 유래가 뚜렷한 반면 우리말은 근원을 모른다. 기록과 기억의 부재 탓이다. 기록을 소홀히 하는 폐습은 비단 옛일만은 아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30년간 발행한 한국문집총간은 1259종이다. 대부분이 개인 문집이고 정작 중요한 역사와 학술, 사상 서적은 손을 못 대고 있다. 현재 번역이 필요한 한문 서적은 1만 종 10만 책. 고전번역원은 이 중 1차로 내년부터 10년간 2000종을 펴낼 계획이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아마 예산 탓인 듯하다.

반면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 2000년대부터 주변국의 한문 자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른바 고서공정이란다. 타국의 역사에 이어 타국의 문화적 소산까지 손대려 하다니…. 팽창주의가 심히 우려스럽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은 2년 만인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에 통합됐다. 기껏 고조선, 부여, 발해의 역사만 가볍게 다뤘을 뿐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역사지도를 내놓았지만 부실 딱지를 받아 폐기됐다. 도종환 문화부장관 청문회 때 거론됐던 ‘환단고기’ 논란은 이와 관련돼 있다. 독도 표기와 한사군 위치 문제가 빌미다. 부족하면 보완하면 될 것을…. 수백억 원을 들인 성과물을 폐기해 존재 자체가 흔들릴 판이다.

다시, 광복절이다. 72년, 그 긴 세월 동안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일제시대는 한마디로 우리말의 수난기였다. 창씨개명은 말할 것도 없고 창지개명이라 하여 3만600여 개의 군, 면, 리, 동 이름을 바꿔버렸다. 긴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도 서울 지명의 35%가 일제 때 이름이라 하니 기가 막힌다. 상해 임시정부 기념관도 이제야 서울에 건립한다. 망각의 도가 지나치다.

가야사 연구라…. 정부가 나서니 다들 생뚱맞다 했을 듯하다. 한데, 그게 아니다. 잃어버린 역사의 고리를 찾는 건 우리의 근본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과거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미래의 거울이다. 온 곳을 모르는데 갈 곳을 알겠는가. 물론 해야 할 일은 가야사만이 아니다. 북방로와 남방로의 민족 이동로, 고대사와 그 뿌리인 우리말의 근원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역사의 시야를 아시아 전체로 넓혀야 우리의 본 모습이 보인다. 말은 곧 우리 역사의 거울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다.

‘멋’은 외국어에 없는 독특한 우리말이라고 한다. 모음 하나를 바꾸면 ‘맛’이 된다. 둘은 같으면서 다르다. 그 미묘한 쓰임새는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족하다. ‘우리’라는 말도 특이하다. 세상에 ‘나’를 ‘우리’라고 말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엄마…. 이런 기묘함은 어디서 온 걸까. 수메르든, 인도든, 몽골이든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말의 역사를 정립해야 뿌리가 굳건해진다. 우리말의 뿌리를 추적하는 건 역사를 바로잡는 지름길이며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는 새로운 길이다. 그것은 곧 일제가 심어둔 실증사학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 핼러윈 인파 혼잡에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2. 2오픈AI 샘 올트만 깜짝 방한…삼성 사장단에 AI 특강
  3. 3롯데렌탈 매각 거래종결, 1조3000억원가량 대금 확보
  4. 41248회 로또 복권 1등 15명…당첨금 각 19억 3365만 원씩
  5. 5기초연금 받으면 부자?…수급 상위 1% 근로소득 월 220만원
  6. 6북항 ‘부캉이’ 닷새째 자취 감춰…수온 하락 영향도
  7. 7[속보] 국힘 장동혁, 李대통령에…“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나”
  8. 8트럼프 “이란과 대화 중…전쟁에 쓴 돈 베네수서 만회”
  9. 9민주콩고 에볼라 사망 5천명 넘어…확진자 절반 사망
  10. 10‘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1. 1[속보] 국힘 장동혁, 李대통령에…“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나”
  2. 2한미일 외교장관 “北 완전한 비핵화 위한 의지 재확인”
  3. 3장동혁 “李대통령 ‘황제골프’ 수준 넘어 ‘민폐골프’”
  4. 4진성준 뒤늦게 美비자 발급, 野"한미동맹 균열 드러낸 외교 망신"
  5. 5李대통령 "다문화 지원 필요하나 역차별까지 정당화 안 돼"
  6. 6“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7. 7“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8. 8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9. 9[속보]한동훈, "李 정권 막는 명분 같이라면 '훈훈연대' 힘을 모을 것"
  10. 10[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1. 1오픈AI 샘 올트만 깜짝 방한…삼성 사장단에 AI 특강
  2. 2롯데렌탈 매각 거래종결, 1조3000억원가량 대금 확보
  3. 31248회 로또 복권 1등 15명…당첨금 각 19억 3365만 원씩
  4. 4기초연금 받으면 부자?…수급 상위 1% 근로소득 월 220만원
  5. 5삼성 사장단 50여명, 샘 올트먼과 AI 미래전략 논의
  6. 6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0.5원 ↑
  7. 7‘바이낸스’ 8조원대 해킹에 거래소들 보안 점검
  8. 8한화오션까지 동참… '조선사 빅3' 공동납품 체계 완성
  9. 9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10. 10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1. 1[속보] 핼러윈 인파 혼잡에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2. 2북항 ‘부캉이’ 닷새째 자취 감춰…수온 하락 영향도
  3. 3민주콩고 에볼라 사망 5천명 넘어…확진자 절반 사망
  4. 4부산·울산·경남 대체로 맑음…낮 최고 19∼21도
  5. 5[날씨칼럼] 가을 하늘, 안전을 돕는 페이스메이커
  6. 6기표소서 투표지 촬영해 단톡방 공개한 50대…벌금 50만원
  7. 7홍대서 ‘마약 사탕’ 신고…경찰 확인 결과 오인신고
  8. 8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웃돈 붙여 되판 10대 검거
  9. 9[속보] 日여성 살해 30대 남성…성범죄 목적 가능성도 수사
  10. 10무면허 음주 뺑소니에 제지하던 사람 다치게 한 40대 항소심도 실형
  1. 1‘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2. 2“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3. 3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4. 4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5. 5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6. 6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9. 9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10. 10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클릭으로 여는 독도
지긋지긋한 론스타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출석 거부하며 장외 사실호도 일삼는 지광
AI 해킹 범죄 고도화…수사 공백 해소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