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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명작 인생을 위하여

곡소리·고함 낭자한 사극… 恨을 승화하지 못한 때문

인생이나 역사 명작 만들려면 소리 없이 칼 갈아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8-03 19:11:2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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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쓰는 중이다. 글쓰기가 막히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다시 보기’로 역사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한다. 가장 편한 자세로 머리를 식히며 졸음을 기다리는 것인데, 안 된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호곡(號哭), 혹은 발악의 고함. 그것도 거의 10분에 한 번꼴이니 공포영화도 아니고, 스토리상으로도 그처럼 고음일 필요는 없으니 엽기적이라 할밖에. 결국 짜증에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현대극이라고 다르지 않다. 도대체 이게 뭐람! 아니, 왜?
흔히 ‘한(恨)’의 역사, 한의 민족이라 하는 이들도 있다. 딱히 부인할 수 없기도 하다. 땅은 좁고, 자연재해로 인한 기아(飢餓) 아니면 가렴주구, 그도 아니면 괴질(怪疾)이거나. 침략은 또 얼마나 잦았나.

어느 날 중국 상공을 비행기로 날다가 문득 역사가 궁금해 공부를 시작하니 다른 나라 역사도 궁금해지고, 취재차 답사도 하게 되었다. 우매해도 십수 년이 지나니 깨우치게 되는 것이 있었는데, 먼저는 우리가 겪었다는 그 수많은 고통이 우리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 민족도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예 망해버려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나라가 부지기수이고, 제 말(語)을 잃고 자신의 내력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도 고통의 역사는 마찬가지이고, 노예로 끌려갔다가 그 나라 국민이 된 사람은 우리 국민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또 알게 된 것은 여전히 피와 살육에 눈물짓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다른 점이다. 바로 갈등을 멈추지 않는 것과 많은 것을 포용하는 차이.

이제 육체노동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어가고 있다. 어느 저명한 학자는 ‘불로소득’이 비난받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단순히 금수저로 물려받아 누리는 불로소득은 아닐 것이다. 아마 창조의 아이디어로 누리게 될 불로소득, 즉 글자 그대로 노동하지 않는 불로소득을 말하는 것일 테다. 이미 우리가 부러워하는 소수의 엄청난 부의 실체는 그것이고, 대부분 사람은 그 창조의 아이디어를 몸으로 실현해 주는 역할로 살아가고 있는 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 등의 획기적 발전은 몸으로 해오던 사람의 일을 빠르게 빼앗아 갈 테니 창조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완전 바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살아남고 최소한 서럽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창조에 동참해야 한다. 개인뿐 아니라 나라조차. 그럼 창조의 밑바탕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내 근원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흔히 말하는 전통의 계승을 뛰어넘는, 인류학적 이해에 추리와 상상까지 더한 샅샅이, 깊이 인식하기 말이다. 두 번째는 남의 것 받아들이기다. 모든 창조는 모방의 발전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모방으로 시작한 재창조는 표절이 아닐뿐더러 내 것과 남의 것, 과거와 상상의 융합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이제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내 근원 인식. 우리는 우리의 근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과거로 거스를수록 기록은 없고, 드문드문 발견되는 조각들은 난해한 암호 같아 해독이 어렵다. 차분한 고요 속에 오래 들여다보고 여러 상상으로 추리해야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호곡이나 발악 소리는 그 모든 것을 방해하고, 미움의 수렁에 빠진 마음은 눈마저 멀게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 음악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재즈는 노예로 아메리카 대륙에 팔려온 흑인들로부터 시작된 음악이다. 남미 대륙에도 그런 흑인들과 유럽 제국의 침탈로 모든 것을 빼앗겼던 원주민들의, 우리 식으로 한을 담은 음악이 많다. 그렇지만 가사에는 슬픈 사연이 담겼어도 리듬 자체는 대부분 밝고 유쾌하다.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승화시키는 방법이 다른 것이지 잊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과의 갈등, 내부에서의 갈등, 과거와의 갈등…. 모두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제대로 승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끊어내지 못하면 결코 창조의 땅은 일구지 못한다.

다음, 남의 것 받아들이기. 미움은 반드시 구분 짓기를 하니 선입견으로 외면하는 것이 많게 된다. ‘한’이라는 것을 깊이 품으면 그만큼 시야도 좁아지니 겉모습만 보게 된다. 절반의 융합은 절반의 창조, 즉 절름발이 결과가 되기에 십상이고 노력은 헛발질로 끝난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말한 바 있지만 모든 제국은 포용으로 시작되고 담장을 쌓으면서 무너졌다.

‘분노하라’가 호응받고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꼬이고 풀리지 않아 열 받은 사람들에게 분노는 도화선이 되었고 기어이 끝장을 봤다. 한풀이는 그만하면 이제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놈의 한, 너무 오래 이용당해 왔고, 여전히 부추기는 세력도 있는 듯하다. 부추기는 세력의 꿍꿍이에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나라 여기저기가 또 골병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지만 나라도 결국은 국민이 만들어내는 것이니 각자 개인이 갈등의 고리를 벗고 포용의 길에 나서면 머지않아 바른길을 가게 될 것이다.

드라마 한류의 대표작으로 ‘대장금’과 ‘태양의 후예’를 들고 싶다. 내가 그 작품들을 손꼽는 것은 무엇보다 터무니없는 고함과 호곡으로 과장하지 않는 점을 높이 사서이다. 진짜 큰 슬픔에 젖은 사람은 통곡이 아니라 소리 없는 눈물로 뼈에 삭이며 오래 기억한다. 다소 억울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당하면 담담하게, 혹은 웃음으로 대응하며 내일을 기다린다.

낭자한 곡소리와 앞뒤 없는 고함으로 눈길 끌려는 이야기. 스토리에 자신이 없거나 안 되는 연기력을 감추기 위해서일 확률이 아주 높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길 수 있으면 고함칠 필요도 없고 이기려면 소리 없이 칼을 갈아야 하지 않은가. 명작 영화나 드라마처럼 각자의 인생도 명작으로 만들려면 목소리부터 다스려야 할 일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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