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화가 그렇지만 그리스신화도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시작된다. 하늘 우라노스와 땅 가이아가 합해 티탄 신족 12남매를 낳는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는 제우스와 동침해 딸 아홉을 낳았는데 이들이 음악의 여신 뮤즈다. 개략적으로 6명의 남신은 하늘, 6명의 여신은 땅을 담당한다. 므네모시네와 함께 테미스는 법과 예언의 여신인 점이 눈에 띈다. 그리스신화가 지적으로 상당히 분화한 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기억이 최초 신족 중 하나로 꼽힌 것은 특이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의하면 논리적 비약이라는 반론이 당장 날아들 것이다. 한데,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기록은 일단 가장 오래 기억하는 방법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면 그 존재는 잊힌다. 기록이 곧 존재라는 주장은 그래서 과장이 아니다.
천재도 기억에만 의존하면 바보 소릴 듣는다. 슈베르트는 자작곡을 연주하면서 곧잘 누구 곡인지 물을 정도로 건망증이 심각했다. 기억은 늘 이렇게 불확실한 것이다. 탁월한 기억력은 흐릿한 판단력과 결합한단다. 기억은 발이 수천 개여서 잠시 잠깐 사이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보자. 부산에 기록 문화는 있는가. 문화 불모지란 오명은 상당 부분 기억 상실증에서 비롯된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아직도 부산의 정체성이 뭔지 모른다. 저항성? 개방성? 역으로 말하면 오래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땅의 역사를 모르고, 정체성을 모르니 얼렁뚱땅 끼워 맞춘 건 아닐까.
대구를 보면 부산의 모습이 반추된다. 지난 6월 ‘대구지역 임진란사’가 출간됐다. 대구시가 돈을 대고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가 자료를 정리했다. 선양회의 문헌목록집 2권, 총서 4권, 위훈록 7권에 이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구의 임란사가 발굴된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한데, 그게 아니다. 지난 2012년은 임진왜란 7주갑이었다. 그때부터 4년간의 학술대회를 거쳐 책이 나온 것이다. 반면 부산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임란사에서 부산의 역할은 대구에 비할 바 아니다.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진첨사 정발, 다대진첨사 윤흥신이 모두 옥쇄를 감행했다. 임란을 통틀어 이렇게 장렬한 전투는 드물다. 더군다나 전쟁의 시작과 끝이 모두 부산이다. 2012년 이전 복천동에 임란 박물관을 계획했으나 흐지부지됐다. 부산시장이 바뀐 뒤 이번에는 전쟁박물관 이야기가 나오더니 오리무중이 돼 버렸다. 참, 한심한 노릇이다.
최근 부산시의회에서 부산학 진흥 조례를 발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마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한 민간극단이 윤흥신 뮤지컬을 선보인 것도 고무적이다. 희미한 역사 자료 때문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무튼 역사 조명의 촉매가 됐으면 좋겠다. 부산시나 구청, 대학들은 각성이 필요하다. 동북아 최대전쟁인 임란에 대한 세미나 한번 열지 않는 기억 상실증은 대오각성이 있어야 한다. 6·25라고 다를까.
말이야 제2 도시지 정신은 과거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박약아 수준이다. 정부 방침에 맞춰 경남, 전북은 가야사 발굴에 열심인데 부산은 열중쉬어다. 부산의 흘러온 역사를 모르고 무슨 자부심이 생길까. 부산진성, 다대진성 등 역사 복원엔 아예 관심도 없다. 그래서야 무슨 자부심이 돋아나겠는가.
고려 왕사였다는 만덕사는 범어사보다 크고 동양최대인 황룡사지와 맞먹는다고 한다. 본당인 금당의 터, 치미의 크기, 당간지주의 규모로 보아 그렇다는 이야기. 절 이름도 만덕사냐, 기비사냐로 논란이 있지만 관심조차 없이 내팽개쳐진 상태다. 북항은 몽골이 제주도의 삼별초 정벌을 위한 전진기지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데, 경상좌수영은 왜 수영에 있었는지 이해 불가다. 좌수영이 북항에 있었다면 임란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얼이 빠진 도시가 부산이다. 장산국, 거칠산국은 물론이고 가야와 신라 시대 역사도 망각됐다. 국가나 민족의 흥망은 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역사에 대한 뿌리 의식, 자부심, 강인한 의지에 달려 있다. 이른바 민족의 혼, 얼이란 게 그런 것이다. 도시라고 다를까.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데 미래에 광영이 있겠는가 싶다.
혼과 얼, 정체성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더듬어 역사를 밝히는 것이다. 세미나도 열고, 박물관도 만들고, 유적지도 복원하고 그렇게 말이다. 서울에 경복궁과 4대문이 없다면 어찌 될까. 역사와 유적은 곧 혼과 얼, 정체성의 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는 기억 상실증에 빠지지 말자. 그러려면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