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장관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차관을 호출했다. 다짜고짜 신경질을 부리며 야단을 쳤다. 차관은 황당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울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장관 방을 나온 차관은 국장을 불러 한바탕 퍼부어댔다. 국장은 기가 막혔다. 갑자기 왜 저런 거야. 개똥 밟은 기분이었다. 국장은 과장을 불러들였다. 보자마자 마구 닦달했다. 과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두들겨 맞은 것이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과장은 계장을 불렀다. 양동이로 들이붓듯 화풀이를 했다. 계장은 어이가 없었다. 계원을 찾았다. 과장에게 들은 욕에다 곱절은 더해 쏟아부었다. 계원은 이대로 참고 있다가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수위에게 쫓아가 막무가내 야단을 쳤다. 수위는 화가 치밀었지만, 관청 안에선 화풀이할 데가 없었다. 퇴근한 수위는 아내에게 화를 냈다. 아내는 부엌에서 식식거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마침 고양이가 보였다. 냅다 고양이 배를 걷어찼다. 고양이는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났다.
터키의 국민작가인 아지즈 네신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를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편다. 저 고양이는 왜 저기에 있을까.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고양이가 쫓겨난 이유’를 추리로 완성한다.
기업 총수들의 ‘갑질’은 옴니버스 드라마다. 운전기사 폭행과 욕설은 기본이다. 요즘은 ‘가맹점 갑질’이 대세다. 엽기적인 갑질도 많았다. 어떤 분은 1인 시위하는 화물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20대를 때리고는 한 대에 100만 원씩, 2000만 원의 맷값을 건넸다. 영화 ‘베테랑’이 생각난다. 땅콩 주는 법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승무원을 무릎 꿇린 후 폭행하고 항공기를 되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도 있었다.
‘갑질’은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저지르는 부당한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갑’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 아지즈 네신이 꿰뚫어 보았듯이 장관은 차관, 차관은 국장, 아내는 고양이에게 갑이다. 갑-을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한다. 상무는 비행기에서 라면을 끓여내라고 승무원을 닦달하고,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상전 노릇을 하고, 교수는 학생을 밥으로 여기고, 인허가 공무원은 민원인의 서류를 틀어쥐고 갑질을 한다. 백화점에서 모녀는 주차장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리고, 음식점에선 평범한 시민도 종업원에게 안하무인의 행동을 한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갑질 사회 같다.
지난해 한 일간지가 만든 ‘갑질 상사 체크리스트’는 흥미롭다. 부서 회식을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나 식당을 고집하는 편이다. 부하 직원에게 술을 강권하거나 붙잡고 밤늦게까지 마시는 편이다. 주말에 부하 직원을 불러 운동 등산 등 야외활동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업무와 관련 없는 개인적인 일을 부하 직원에게 시키기도 한다. 부하 직원이 올린 아이디어나 보고서를 가로채거나 함께 이름을 올린 경험이 있다. 부하 직원의 외모나 의상에 관해 얘기하거나 업무와 연관지어 말한 적이 있다. 부하 직원의 의견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묵살한 경험이 있다. 업무를 지시할 때 가끔 화를 내거나 욕설 등을 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에게 손찌검하거나 물건을 던진 적이 있다. 부하 직원에게 밥값 혹은 술값을 떠넘긴 적이 있다. 이 중 8개 이상은 정도가 심한 갑질 상사, 6·7개는 어느 정도 갑질 상사, 3~5개는 갑질 성향이 보이는 상사, 2개 이하는 직원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상사란다. 당신은 어떤가.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갑질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돈과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자신을 과대 포장하고 수시로 약자에게 발톱을 드러내는 건 성장 과정에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만 갑질을 하는 게 아니다. 나와 당신 누구도 그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도 갑질을 한다는 건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감옥 실험’에서 확인됐다. 사람들을 교도관과 죄수로 구분지어 놓았더니 얼마 안 돼 갑과 을의 역할에 충실하더라는 것이다. 갑질은 주위 사람에게 질병처럼 전염되고 전승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치 군대의 후임병 괴롭히기와 시집살이의 대물림, 그리고 장관과 고양이처럼.
갑질은 갑이나 을,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분노 억울 짜증 우울 무력감 의욕상실을 느낀다. 갑질이 인간의 본성은 아닐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건 강자가 약자에게 갑질을 해서가 아니라 협동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공감 능력을 키우고 배려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갑질 때문에 삼복더위의 불쾌지수가 더욱 높아지게 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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