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중년 남자가 두 여자를 신붓감으로 골랐다. 어느 날, 남자는 두 여자에게 머리카락 손질을 부탁했다. 젊은 여자는 남자를 젊게 보이게 하려고 흰머리카락을, 나이든 여자는 자신과 어울리게 검은 머리카락을 뽑아냈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대머리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라 퐁텐 우화’의 한 토막이다.
어째 황당하긴 한데 재미는 있다.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라 지향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다. 조금 과장되고 엉뚱하고 비현실적이어야 주제가 드러난다. 상황을 떠올려 보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애쓰는 두 여자의 욕심이 보인다.
‘지향성’이란 이런 것이다. 대상은 같은데 선택은 상반되니 흥미롭다. 지향성이란 의식이 어떤 대상을 향하는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대입하면 과거의 존재, 현재와 미래, 가상의 세계 등이 대상이 된다. 문제는 지향성을 가진 의식은 맹목성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실재든 아니든, 옳든 그르든 무조건 옳고 실재적인 것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세상의 다툼은 이런 지향성 때문에 생겨난다. 그 중에서도 정치 분야가 특히 그렇다. 지향점이 과거, 미래 중 어디로 향해 있는가는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잣대가 된다. 역대 정권을 보면 과거 지향은 망조였다. 현재 지향이라면 오락가락 종잡기 힘들다. 그렇게 놓고 보면 미래 지향이 성공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임기의 30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가볍지 않다. 앞으로 5년의 방향타이니 말이다. 아직은 과거 지향인지, 미래 지향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런 속에서도 나름 기대와 함께 불안한 대목이 없지 않다. 경계의 대상을 짚어 관전평을 대신하는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추정컨대 실패는 주도면밀함이 결여된 개혁이거나 정권을 내준 것쯤 되지 않을까 한다. 집권한 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재집권을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 어느 정권이라고 그걸 시도하지 않았겠느냐만은 꽤 정교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게 다른 듯하다.
소위 말하는 적폐 청산, 다시 말하면 정치, 세대, 인물, 시대 교체라는 건 양날의 칼이다. 경험상 개혁은 늘 정부가 떠들어대는 품질 나쁜 상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다를 것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문건 300건은 박근혜 정권과 우병우를 비롯한 세력을 향한 칼날이다. 국가정보원 개혁의 13개 과제도 뇌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국정을 흔들었던 매머드 사건 목록이다. 국정원 개혁을 넘어 정치 세력의 청산을 담고 있다.
또 있다. 검찰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위산업 비리 수사. 박근혜 정부 때 흐지부지됐던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등 이른바 사자방 비리의 재수사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국방개혁과 맞물려 또 한 번 거대한 회오리가 몰아칠 게 분명하다.
다분히 과거 지향적이다. 목적이 개혁이라지만 칼날이 번쩍거리고 선혈이 낭자할 것이다. 비바람 치는 밤길을 걷는 것처럼 정국이 혼미할 수도 있다. 당위성과 현실은 그렇게 괴리가 있다. 목적과 수단 간의 파열음이기도 하다. 물론 과거와 인적 청산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 그렇기는 한데 반드시 반작용이 따른다. 분노의 칼날보다는 배려의 칼등이 어떨까. 힘은 절제될 때 참다운 권위를 가지는 법이다. 마음의 승복은 물론이고 공감과 공명은 그런 것에서 비롯된다.
답은 제도 개혁에 있다. 희거나 검은 머리카락을 뽑아내기보다 그것대로 고쳐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과거의 청산도 좋지만 미래의 설계가 길고 오래 간다. 소위 100대 과제와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저출산, 지역 균형발전의 4대 복합혁신 과제는 그런 핵심을 잘 짚었다. 한데 지역 공약이 쏙 빠져 찜찜하다. 지역의 자생을 뒷받침하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상위에 놓여야 옳다.
개인적으로는 저출산, 분권이 핵심 목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출산은 국가 존립의 근거와 관련돼 있으며 미래 지향성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육아와 교육은 국가가 맡는 게 출발점이다. 고교 무상교육, 유치원 보육원 통합, 누리과정 국고 부담 정도론 아직 목이 마르다.
집중의 폐해는 한국병의 근원. 권력과 부의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는 만사휴의다. 서울, 대기업, 대통령, 정부, 국회, 검찰의 초집중을 대거 분산해야 실마리가 풀린다. 지방분권 개헌,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책임 총리제와 책임 장관제, 국회의원 특권 철폐…. 행정수도, 공공기관 이전에 이어 대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건 어떨까. 그것만 돼도 전국적으로 변화의 바람이 분다. 가야 할 방향이 뚜렷하다면 수단은 유연해야 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