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중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가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체력시험에서 동기가 낙오하지 않도록 이끌고 갈 만큼 그는 평소 건강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혈관육종이라는 암 진단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2006년 부산남부소방서를 시작으로 부산소방본부 특수구조단과 국민안전처 중앙119구조본부에서 7년 9개월 근무하는 동안 1000번이 넘는 화재진압, 구조업무를 했던 그였다. 그러나 폐와 심장으로 전이된 혈관육종은 31살의 젊은 그를 항암치료 7개월 만에 저세상으로 데려갔다. 350여 명의 생명을 사지에서 건져낸 수호천사였지만 정작 자신의 생명은 구하지 못했다.
김범석 소방관. 그는 생전에 화마와 싸웠지만 지금 그의 아버지는 국가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가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혈관육종이 공무에 기인한 질병으로 볼 수 없다며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유가족은 다시 유족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지난 3월 30일 청구를 기각했다. 김 소방관의 아버지 김정남 씨는 항변한다. "공단과 국가에서조차 소방관의 혈관육종이 공무상 재해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하면서 힘없고 전문지식도 없는 유가족에게 그 일을 떠넘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소방관이 아프다. 죽어가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린 알면서도 외면해왔다. 언론에 그들의 열악한 처우나 장비지급 실태가 보도되면 그때만 반짝하고 관심을 기울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해졌다. 우린 그들에게 생명을 지켜달라고 요구만 했을 뿐 그들의 생명과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했다.
매년 평균 6명의 소방관이 화재나 구조활동 중에 숨지고 이보다 많은 수의 소방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또 한 해 300여 명이 부상하고 전체 소방관의 40%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을 겪고 있다.
소방관들은 '우린 죽어야만 알아준다'고 말한다. 2001년 서울 홍제동 화재현장에서 6명의 소방관이 숨진 참사처럼 자신들이 죽어야만 정부든 국회든 관심을 가져준다는 참담한 얘기다. 관심도 그때뿐이다. 서울소방학교에 세워진 추모비조차도 유족들이 자비로 세웠다.
공무 수행 중 질병이 생겨도 보상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2011년부터 암이 발병해 공상 신청을 한 소방관 25명 중 24명은 기각됐다. 여기엔 김범석 소방관도 있다. 화재현장에서 성분도 알 수 없는 온갖 유독가스와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시며 폐와 심장이 부서지고 마모됐을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화재진압을 하다 다쳐도 공상을 신청하는 소방관은 거의 없다. 안전사고로 간주해 책임소재를 따지다 보니 '자아비판'이 따로 없다. 인사고과에 반영되면 몇 푼 안 되는 상여금만 날아가 버리는 수가 있다. 업무 중 부상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도 공상처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래저래 소방관들은 개인 돈을 들여 쉬쉬하면서 치료를 하는 게 다반사다.
늘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화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소방관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심각하다. 일반인은 평생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참혹한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인명을 구조해놓고도 미처 구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회한과 희생자의 눈동자가 어른거리며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난 괜찮아'라고 자위하지만 공포와 불안, 죄책감은 이들 슈퍼맨의 몸과 마음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소방관들이 일반인에 비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발병률이 10배, 우울증 5배, 수면장애 4배, 알코올성장애 7배에 달한다는 국민안전처 자료도 있다.
미국 몽고메리 타운십 소방서의 소방관이 화재현장에 출동할 때 입고 착용하는 복장과 장비의 가격은 총 8225달러(약 900만 원) 어치에 달한다. 방화복 상·하의가 각각 800달러, 공기호흡기(SCBA)는 4000달러 짜리다. 우리나라 소방관의 경우는 어떤지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다만 2015년 품질검사도 받지 않은 가짜 방화복이 전국 소방서에 공급돼 1만9300벌이 회수된 적이 있다. 당시 방화복 한 벌 가격이 60만 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소방관들의 상·하의 한 벌 값이 미국 방화복 하의 가격보다 싸다. 또 소방직이 지방직이다보니 장갑 방화두건 그 밖의 개인보호장비는 지방자치단체별로 품질에서 차이가 나고 그것 조차도 어떨 땐 제때 지급이 안 돼 개인이 돈을 들여 사 쓰는 일도 벌어진다.
소방공무원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다. 소방관이 바로 국가라는 말도 했다. 이번만은 공수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소방관이 안전하고 건강해야 국민이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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