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뚱보 나라였다. 남자가 채소를 먹는 건 금기시됐다. 버터, 고지방 우유, 고기 등 기름 덩어리가 주식이었다. 2005년 핀란드는 가장 날씬한 국가가 됐다. 심장병 환자 수가 세계 최고에 달하자 핀란드 정부가 건강 회복 프로젝트를 30년간 밀어붙인 결과. 1999년 요르단은 100년 만의 가뭄에 시달렸다. 다음 해 요르단 정부는 물 절약 캠페인을 시작해 5년 만에 최악의 물기근 국가에서 중동의 수자원 선도 국가로 변모시켰다.
필립 코틀러의 '퍼블릭 마케팅'에 등장하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마케팅은 단순히 제품, 가격, 장소, 홍보 등 4P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마케팅이라 주장한다. 퍼블릭 마케팅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하는 걸 일컫는다. 납세자의 세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게 퍼블릭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전기드릴을 사는 게 아니다. 1인치 구멍을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화장품은 희망, 숙소는 편안함, 우표는 소식을 사는 것이란 식이다. 실제 제품은 품질, 기능, 디자인을 사는 것이듯이 핵심 제품은 구매의 이유에 해당된다. 여기에 추가 기능과 서비스를 포함하는 보강제품도 함께 구매한다.
코틀러의 '퍼블릭 마케팅' 개념을 정부의 정책에 대비시키면 나름 재미가 있다. 마케팅을 잘하려면 고객중심주의, 시장 세분화와 타기팅, 경쟁자 파악, 폭넓은 전략, 성과 측정과 방향 수정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압축하면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이라 할 만하다. 이미지가 정치 생명이듯이 브랜드는 정부의 질적 수준을 가름한다. 브랜드화는 짧으면 5년, 길면 수십 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상품은 '과거와는 다른 오늘'이다. 탄핵을 낳은 전 정부와 정반대의 상품을 팔겠다는 것이다. 우선은 측근 배제.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남긴 말이다. 그를 필두로 참여정부 인사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 박선원 전 통일안보전략비서관,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도 출국과 2선 후퇴로 궤를 같이했다.
문 대통령의 대국민 스킨십도 성공작이다. 출근길 주민, 영도 부모님집 주민들과의 셀카와 격의 없는 만남, 청와대 참모들과의 커피 산책, 식판 들고 줄 선 대통령, 여민관 근무, 와이셔츠 차림의 회의…. 친근감, 탈권위, 열성 그런 새로움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대화를 연상케 한다. 기획이라면 명품이다. 산뜻하긴 한데 감동의 지속은 어려워 보인다.
두 번째 작품은 인사. 정부, 청와대 인선을 쭈욱 훑어 보면 참여정부와 호남, 의원 출신이 주류다. 물론 경제부총리, 외교부장관 후보자,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민정수석 등 파격도 있었다. 대체로 안배가 주 상품인 셈인데 고객의 니즈에 부합된다. 참여정부 출신의 청와대 멤버, 의원 출신 내각 명단은 약간의 쏠림이 있다. 해본 사람은 과거와 다를 바 없고, 정치인의 입각은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남발하면 브랜드 망친다.
외교안보라인에 안보 전문가가 없다? 여기엔 안배가 부족하다. 남북 관계의 전환? 방향은 좋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대화와 협상이란 카드를 다 보여주는 게 맞을까. 공정위원장,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은 갸우뚱이다. 적폐 청산과 혁신이 국정의 제1 코드라면 도덕성은 당연히 제1 덕목이다. 벌써 지지율 하락? 인사 누수를 방관해선 안 된다. 아니다 싶으면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익이 상충되는 사안도 곧잘 목격된다. 새 정부의 무게 중심은 재벌 규제와 중기 육성에 있다. 대기업 갑질 규제, 카드 수수료 인하, 청년 채용 임금 지원…. 한데,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이해가 맞부딪힌다. 3년 내 6470원인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면 중소기업 인건비가 82조 원 오른단다. 중기는 물론 영세 자영업자에겐 대책이 없다. 방향은 옳지만 혁신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급히 먹으면 체하고 서두르면 돌부리에 차이게 돼 있다.
탈원전 선언의 구현도 다소 어려움이 있다. 신고리5, 6호기의 건설을 당장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대규모 전력 발전인 원전의 대체 수단의 마련이 쉽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한 발 물러선 이유다. 친환경 기조는 옳은 방향이고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그래도 신재생 에너지 대체와 탈원전은 보조를 맞춰야 한다.
새 정부의 정책은 상품성이 괜찮다. 한데, 인사와 정책에서 하나씩 개미 구멍이 생기면 둑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마케팅의 궁극적 목적은 고객이 저절로 제품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브랜드 전략을 고수하되 캠페인의 방향성은 유기적으로 조정하라.' 코틀러의 조언이다. 지방화와 분권화, 이런 걸 브랜드로 삼는 데 진력하는 건 어떤가. 시대 흐름에 맞고 국민의 눈높이에도 부합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