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대선이야 누가 되든 일단 접어 두자. 당장 내일부터 당면할 문제에 집중할 때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게 일차적인 선택이다. 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환희와 의욕에 가득 차 말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습니다. 모두가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하나, 자중하시라. 하늘은 스스로를 높다 하지 않고, 빨리 달리면 반드시 넘어진다. 그러니 자중자애다. 태산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변혁? 대개혁? 말인즉슨 옳다. 근데 그게 가능이나 할까 싶다. 당장 맞닥뜨릴 북핵 위기, 사드 갈등, 미중일 문제만 해도 첩첩산중이다. 미국 금리 인상 등 경제적 변수도 널려 있다. 섣불리 들쑤시다간 담배씨로 뒤웅박 파는 꼴 된다. 미주알고주알 파헤치면 돌아오는 건 분열과 갈등, 분노뿐이다. 당장은 냇가의 돌 하나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내부는 더 엉망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로 나뉜 민심은 대책이 없다. 세대·계층 갈등, 빈부 격차, 가정과 공동체의 해체, 도덕성의 붕괴, 가계 부채와 기업 부실화…. 과연 뭘로 이런 걸 해결할 것인가. 탕평? 협치? 연정? 말은 그럴싸한데 현실은 동떨어져 있다. 무슨 일이든 손만 대면 벌집이다. 교과서? 위안부? 경제민주화? 세제 개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건 없다. 국정은 광대들의 줄놀음이 아니다. 절대로 재주 피우려 하지 마라. 어리석고 투박해 보이는 큰 지혜와 큰 기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숱한 과제 중에 새 대통령이 해야 할 핵심이 하나 있다. 캠프 정치의 청산이다. 말이 좀 어렵나? 쉽게 말하면 측근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참모정치의 폐해라? 박근혜 정부에서 실컷 맛봤다. 역대 정부의 비참한 말로는 이로부터 연유한다. 이번엔 정권 인수 기간이 없다. 당연히 이런 폐해의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전쟁 치른 참모들을 대거 권력 주변에 포진시키면 그것으로 국민통합은 끝이다.
그 대신 권력과 무관한 중립적 인물을 기용해 그들에게 실권을 부여하라. 그러면 일단 위기의 강은 건널 수 있다. 권력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마라. 손과 입을 대면 동티가 난다. 삼성의 역설, 대통령 공석의 아이러니를 기억하라. 간여를 줄이니 모든 게 순항이다. 전두환 정권 땐 권력이 경제에 간섭하지 않았다. 최고 성장률을 구가한 비결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땅콩 대통령으로 불린다. 결정권은 장관에게 나눠주니 존경받는 대통령이 됐다.
물론 할 일은 따로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만 하면 된다. 마음부터 사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우선은 권력과 권한의 분산이다. 해방 70년의 역사는 권력과 권한, 부가 집중된 역사였다. 지난 20여 년은 집중의 폐해가 와르르 쏟아진 과정. 이만큼 당해 봤으면 이제 생각과 행동을 바꿀 때도 됐다. 대통령의 권한은 내각으로, 국회로 내려 보내라. 총리든, 장관이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한미FTA, 개성공단, 사드…. 국익과 관련된 모든 현안은 국회 논의를 거쳐야 맞다.
정부의 권한은 지자체와 나눠라. 재정, 인사, 조직 권한을 주어 지자체끼리 경쟁시켜야 한 발 더 나아간다. 자치제는 민주주의의 처음이자 끝이다. 대기업에 대한 간섭과 특혜를 줄이고 대신 중소기업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시장을 보호하고 정당한 납품 단가를 보장하면 기업 생태계가 되살아난다.
모든 것은 법과 규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 개헌은 필수다. 개헌은 모두가 함께 할 넓은 평상을 마련하는 일이다. 모든 사안을 그 평상에 올려 놓고 앞으로 갈 길을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것이다. 지난 70년은 전통의 가치관을 팔아 자본주의를 산 과정이었다. 이제 서구화, 자본주의화의 역사가 저물고 있다. 그들의 수백 년을 우리는 70년 만에 압축했으니 온갖 폐해가 뒤범벅이 될 수밖에. 개헌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을 담아내야 한다.
천천히 가야 천리를 간다. 모든 걸 하려하지 말고 틀만 마련해도 성공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틀을 말이다. 가계 부채, 기업 부실, 재정 적자는 3개의 폭탄이다. 노령화, 저출산, 청년 취업난은 3대 대란이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세금 제도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이들을 새롭게 하는 것은 권력의 힘으론 안 된다. 여야와 국민의 힘이 함께 모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전갈은 매일 아침 산턱의 문을 연다. 그러면 태양신 샤마쉬는 이륜마차를 타고 하늘을 한 바퀴 돈다. 저녁이 되면 다시 서산으로 들어가 지하를 항해한다. 그리스신화 이야기다. 밤을 이겨내고 겨울을 몰아내는 것은 무력과 강요가 아니다. 그저 빛을 비춤으로써 어둠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새 정부의 정치는 빛이어야 한다. 비 한 방울은 비록 작지만 조용히 땅에 뿌려져 뭇 생명을 고루 키운다. 새 정부의 경제는 물과 같아야 한다.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