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투표는 이미 시작됐다. 공식 투표일은 꼭 일주일 뒤인 9일이지만 주권자의 소중한 한 표는 하나둘씩 던져지고 있다. 해외에 머무는 유권자들의 재외투표는 지난달 25~30일 이뤄졌고, 선상투표는 어제부터 시작돼 4일까지 실시된다. 또 4일부터 이틀간 전국 각지에서는 사전투표가 계획돼 있다.
이번 대선의 선거인 수는 4243만2413명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중 상당수가 마음을 정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유권자도 30%가 넘는다. 지금 지지하고 있는 후보를 언제든 수틀리면 바꿀 수 있다는 유권자가 후보에 따라 20% 초반부터 50%까지 이른다. 이들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이 후보와 저 후보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9일까지 '내 마음 나도 몰라'를 되뇌어 후보들의 애간장을 태울 것 같다.
사전투표는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의 바로미터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사전투표율은 12.2%였다. 전체 투표율이 58%였던 것을 고려하면 투표자 수 대비 사전투표자의 비율은 21.0%다. 총선 투표자 5명 중 1명은 사전투표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사전투표율은 15%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총선보다 대선 투표율이 높고 사전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사전투표가 9일 투표에 미칠 파급효과도 변수다. 선관위가 사전투표가 끝난 다음 날 시·군·구 단위까지 지역별 투표자 수와 투표율을 공개하면 캠프별로 희비가 엇갈릴 게 틀림없다. 지역별 투표율로 후보별 유불리가 대충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의 인증샷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기호를 손가락 등으로 표시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특정 후보에 지지표시를 하면 유권자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게 어느 후보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는 알 수 없지만.
게다가 3일부터는 여론조사 공표도 금지돼 있다. 깜깜이 판세 속에 사전투표의 입소문은 무시할 수 없다. 최종 투개표 결과는 9일 밤 늦게 드러나겠지만 국민의 표심은 어쩌면 사전투표가 끝나는 5일 판가름나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한 표, 한 표의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가.
바보 백치 머저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이디엇(idiot)은 그리스 말 이디오테스(idiotes)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로지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국가 전체의 현안을 다루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 대신 개인과 가족 문제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을 그리스인들은 '이디오테스', 즉 바보 멍청이라고 부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일깨운 주권자의 의무는 시대를 넘나들며 강조됐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불이익 중 하나는 당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고 했고, 미국의 문예비평가 조지 네이선은 '나쁜 관료들은 투표하지 않는 좋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다'고 경고했다. 오죽했으면 작가 단테는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고 목소리를 높일까.
우리는 선거의 중요성을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특정인에게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비극의 씨앗을 키우는 단초다. 미스 코리아나 미스터 코리아를 뽑는 게 아니다. 인기투표는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 선거는 우리의 생명과 재산, 대한민국의 운명과 미래를 일정 기간 맡아서 지키고 성장시킬 대리인을 뽑는 행사다. 고로 유권자는 권력자를 선출하는 단계에서부터 의심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한 말은 핵심을 찌른다. 또 '선거란 누굴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는 플랭클린 애덤스의 경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미 대진표는 나왔다. 가로 10㎝, 세로 28.5㎝의 기다란 사각형 투표지는 대선 후보들이 벌이는 검투 경기장이다. 선거판의 검투사들은 상대방을 쓰러뜨리려 폭탄과 지뢰, 함정과 올가미를 총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 사람을 선택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유권자다.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울지, 땅으로 내릴지는 국민만이 가진 고유한 권리다.
민주주의 역사를 바꾸고 발전시킨 것은 투표였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집단적 의사를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결정체다.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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