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 드라마는 미완이다. 대참극 결말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행적은 짙은 안개 속에 여전히 가려져 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분명 구중궁궐 안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었다고 추측하지만, 주인공과 조연들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변명으로 관객의 분노지수만 계속 높인다.
미스터리물의 압권은 '대통령 찾아 삼만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계신 곳이 집무장소"라고 하더니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날 대통령을 찾아 청와대 이곳저곳을 헤맸다고 말했다. 보좌관이 자전거를 타고서. 비서동(위민관)에서 대통령 관저까지는 가파른 언덕길이어서 사이클 선수가 아니고서는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반박의 진위여부는 잠시 미뤄두자. 476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한 위기상황에서 대한민국 육군 중령이 보고서를 들고 언덕배기에 있는 대통령 관저로 자전거를 타고 헉헉대며 올라가는 모습이라니.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고 대한민국 안보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국방분야를 총괄하며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등에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하달하고 조정하는 자리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모든 업무를 관할하고 있다. 그런 자리에 있는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장이 서로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다니며 찾았다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만약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이라도 벌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할수록 온몸이 떨린다. 그때도 중령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알려야 하나. 아니면 청와대 인근에서 터지는 포탄 소리를 듣고서야 대통령은 변괴가 난 것을 알 건가.
대통령이 백옥주사, 태반주사를 맞았다거나 필러시술을 했네, 안 했네 하는 건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어르신들 말씀마따나 대통령도 예뻐 보이고 싶은 권리가 있다. 다만 근무시간에,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 문제인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건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국가안보실장조차 몰랐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조선 시대 궁궐보다 작동방식이 폐쇄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조선의 왕은 24시간 노출돼 있었다. 용변을 보는 것조차 궁녀들이 지켜봤다. 왕에게 사생활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사관들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모든 걸 공적인 행위로 간주했다. 왼쪽의 사관은 임금의 행동을, 오른쪽 사관은 말을 기록한 중국의 좌동우언(左動右言) 전례에 따라 왕의 언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초에 적혔다. 각 관청도 마찬가지였다. 시정기를 남겼다. 조선의 벼슬아치치고 사관의 붓끝을 피해갈 사람은 없었다. 그 결과물이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이다.
왕은 자신의 언행을 기록한 사초를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선대 왕의 실록조차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왕도 사람인지라 사관이 감시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시시콜콜 적는 걸 좋아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또 선왕의 기록이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를 둘러싼 왕과 사관들 사이의 긴장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고 그것이 후대에 영원히 남겨진다고 하면 간덩이가 붓지 않은 바에야 허튼수작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사냥터나 연회장은 물론 인사행정이 이뤄지는 곳까지 사관들이 찾아가 시시비비를 기록하는데 어느 누가 비행을 저지르겠는가. 조선시대에는 '대통령의 7시간'처럼 최고 권력자가 숨을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한다거나 사적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청와대 측의 주장은 황당하다. 퇴근 후도 아니고 벌건 대낮 근무시간 중에도 사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애당초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해영(부산 연제) 의원이 발의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은 그래서 눈길을 잡는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는 속기록 작성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이다. 국가의 주요사항을 결정짓는 국무회의의 경우 국무위원들이 갑론을박했더라도 국무회의록에는 일시 장소 안건 참석자 의안심의 등만 간략하게 적을 뿐이다. 현행 공공기록물법에 속기록의 작성의무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놓았지만, 속기록을 작성한 경우는 보기 힘들다. 국회가 본회의와 상임위는 물론 소위원회까지도 속기록을 작성해 역사로 남겨놓는 것과 비교하면 행정부의 기록문화는 천박하기 그지없다. 기록하지 않으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보듯 결과는 엄연히 있는데 지시한 사람이 없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당당하지 못한 권력, 구린 구석이 많은 정부는 기록을 외면한다. 기록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결단코 비뚤어질 수 없다. 국민도 기록으로 국정과 정책을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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