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예비주자들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정당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설 연휴 전에 예비후보 등록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정당도 나왔다. 짝짓기 시나리오도 요란하다. 큰 천막을 치면 그 아래로 아무개가 들어올 것이라거나 제3지대 연대 대상에 어떤 정파는 죽어도 끼워주지 않겠다는 가시 돋친 말도 한다. 불임정당이거나 툭 튀는 후보가 없는 정파는 바다 건너에서 곧 귀국할 인사를 향한 추파 경쟁도 한창이다.
정치권은 이미 대통령 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하다. 정치인이 대통령 꿈을 꾸고 정당이 집권을 노리는 것은 존재 이유다. 그러나 그들을 꽃가마 태우자고 1000만 명의 시민이 엄동설한에 아이 언 손 잡고 촛불 들고 주말마다 광장에 모인 것이 아니었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대통령 한 사람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 더는 비정상적인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는 각오, 반칙과 비정상이 판을 치고 특권과 특혜로 얼룩진 나라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에서였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은 올바른 나라를 향한 염원의 다른 말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하다. 야권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만 되면 이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않다. 꼭 그렇지도 않다. 많은 역사가 증명한다.
로마인은 인간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아니 인간성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제도와 법을 믿고 중시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인이 만들었지만, 로마인을 움직이게 한 원천은 로마법에 있었다. 귀족과 평민 간의 견제와 균형,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법의 적용이 로마를 위대한 제국으로 키웠다. 부와 권력이 있다고 면제와 특혜를 누려선 안 된다는 로마인의 생각은 타인에 대한 클레멘티야(관용)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낳았고 로마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이렇게 법으로 무장된 천 년 제국 로마인데도 말기에 이르러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로마인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엉터리 같은 지도자와 인기영합주의에 빠진 황제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3월 이전에 끝나면 벚꽃 피는 계절에 대선이 있을 것이다. 예상이 그렇다는 거다. 더 늦어질 수도, 빨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탄핵심판만 바라보고 그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탄핵심판 전인 2월까지가 대한민국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국가적으로는 위기이지만 개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국회 의석수는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99명을 제외하면 야당 의원만 200석이 넘는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여야 합의 없이도 본회의 상정이 가능한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 지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어느 정당도 절대적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또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당도 집권당이 된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대선을 앞두고 개혁입법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다. 바른정당은 애초에 개혁보수신당이란 이름을 지었을 만큼 개혁을 앞세웠다. 개혁입법 과정에서 각 당 모두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개혁은 말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법과 제도로 정착돼야 완성된다. 인물의 교체는 그 다음이다. 대통령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우선 집중하자는 얘기는 편협하다. 개혁의 화신이나 되는 양 자신이 집권하면 모든 개혁이 다 이뤄질 것처럼 말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치고 선거전 공약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 되고 나서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린 건 모두가 안다. 뒷간 갈 때와 올 때가 다른 법이다. 그게 인간이다.
정치개혁, 검찰개혁,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재벌개혁 등 입법을 통해 청산해야 할 적폐는 쌓여 있다. 비리의혹을 받은 정부와 공무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법대로 했다! 잘못된 법을 고치고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는 바로 설 수 없다. 법을 악용하고, 법을 우롱하며, 법을 농단하지 않도록 개혁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헌법 역시 개혁대상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개혁입법을 해야 할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 당시 골든타임을 놓쳐 억울한 인명이 스러졌다. 탄핵심판이 내려지는 순간 개혁입법은 불가능해진다. 대선 열차가 출발했는데 어느 누가 개혁법안을 붙잡고 있겠는가. 각 정당은 개혁입법 리스트를 내놓고 이견을 조율해 최우선 처리법안을 골라낸 뒤 2월 국회에서 마무리해야 한다.
촛불 민심은 나라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이제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지금도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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