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개인적 미덕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악덕이 될 수도 있다. 저축 증가→소비 감소→생산 감소→고용 감소의 사이클이다. 특히 불황기에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는 것은 부지런한 개미가 아니라 놀고 먹는 베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에서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담긴 경제학의 기본 흐름이다. 케인스는 가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정부가 지출을 늘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연중 최대 소비가 이루어지는 날이 블랙 프라이데이다. 11월의 넷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은 휴일이어서 토·일요일까지 나흘간 휴가다. 연말 쇼핑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상적으로 블랙은 좋지 않은 의미다. 1929년 10월 뉴욕 증시의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시작된 검은 목요일이나 1987년 10월 미국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대폭락했던 검은 월요일 등이 그렇다. 그런데 블랙 프라이데이의 블랙은 소비가 급증해 기업체 매출 장부가 적자(red figure)에서 흑자(black figure)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좋은 블랙이다.
우리나라도 소비 활성화에 온갖 비방을 동원한다. 대통령은 지난 4월 공직자 골프 금지령을 풀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보란듯이 골프 회동을 가졌다. 5월에는 어린이날 다음 날인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어린이날에서 어버이날까지 이어지는 장기 연휴로 소비를 살려보자는 의도다.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이 새로운 소비진작책을 내놨다. 내년 2월부터 두 달에 한 번씩 마지막 주 금요일을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게 함으로써 소비를 진작시키자는 취지다. 근로현장과 동떨어진 방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월말의 금요일이면 정산 등으로 가뜩이나 바쁜데 조기 퇴근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방안을 내놓은 것을 보면 일본도 쓸 수 있는 카드가 동이 난 모양이다.
우리도 남의 일이 아니다. 가뜩이나 소비가 위축된 마당에 김영란법까지 겹쳐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꽁꽁 닫는다. 이런 실정에서 소비 활성화는 솔로몬왕이 오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을 듯싶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