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든 쿠데타든 목표는 현 체제의 타도다. 프랑스혁명에서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가 구체제(앙샹 레짐)의 상징을 무너뜨린 뒤 결국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렸다. 러시아혁명에서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가족과 함께 처형됐다. 프랑스는 공화정이 됐고, 러시아는 볼셰비키 정권으로 바뀌었다.
푸미폰 아둔야뎃(1927~2016) 국왕 체제의 태국은 반대다. 쿠데타는 '국왕 타도'가 아니라 '국왕을 위하여' 라는 명분으로 일어난다. 국왕의 추인이나 재가가 없는 쿠데타는 헛일이다. 국왕이 '노'라고 말하는 순간 쿠데타 주도세력은 정부청사와 방송국 점거를 풀고 탱크를 물려야 한다. 1992년 쿠데타 때는 쿠데타 세력과 반대 세력의 지도자가 왕궁에 소환돼 국왕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태국과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현대 일본에서도 국왕을 위한 쿠데타가 있었다. 1936년의 2·26사건이다. 육군의 청년장교들이 병력을 이끌고 수상 관저 등을 습격해 각료들을 살해하고 국가의 전면적 개조와 군사정부 수립을 요구했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이 내건 기치가 '존황(尊皇)'이었다.
푸미폰 국왕도 취임 초기에는 실권 없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했다. 군부 쿠데타로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된 이후 취임했기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은 잦은 쿠데타를 왕권 강화 수단으로 활용했다. 또 '국왕개발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낙후된 농촌지역 개발사업을 직접 이끌면서 국민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끌어냈다.
푸미폰 국왕에 대한 태국인들의 존경심은 상상 이상이다. 때로는 지나치다. 지난해 연말 태국의 공장노동자가 푸미폰 국왕이 키우는 개를 풍자한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체포됐다. 최고 징역 37년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으로부터 비난이 쇄도했다.
외국인이라고 국왕 모독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2007년 국왕의 초상화에 낙서를 했던 스위스인에게 10년형이 선고됐다. 태국 왕실을 비꼬는 책을 쓴 호주 작가가 징역 3년형을 받은 일도 있다. 군사정권이 국왕을 위한답시고 과잉충성의 분위기를 만들어간 느낌이 없지 않다. 쿠데타도 조절한 국왕이 어째 이런 것은 놔뒀는지.
지금 태국은 국장 기간이다. 방송국들은 추모의 의미로 한 달간 흑백방송에 들어갔다. 태국은 한국인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태국인들의 유별난 푸미폰 사랑을 생각한다면 국장 기간 중 태국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