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6일 북한은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주일 후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예상과 달리 북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반면 이슬람국가(IS)에서 이란 쿠바 시리아 이라크 등 미국 대외정책의 현안 국가들은 빠짐없이 거명했다. 외교계에서는 이를 북한에 대한 '전략적 침묵'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북한에 대해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일종의 무시전략이다.
때로는 무시가 관심보다 훨씬 많은 말을 한다. 2012년 11월 라오스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개회식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노다 일본 총리와 마주쳤다. 원자바오는 인사는커녕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지나갔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영유권을 둘러싼 불편한 감정을 노다 총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으로 표출한 것이다.
무시는 악플보다 더한 모욕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들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에 참전을 결정하는 등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해서 붙여진 오명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2014년 기사 커버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의 푸들'로 표현했다. 친미성향을 비꼰 것이다. 그래도 영국의 가디언이 반 총장을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라고 한 것이나, 뉴욕타임스가 '반기문 어디 있나(where are you)'라고 투명인간 취급한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국회 농림수산식품해양위 국감장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야당 의원들은 이준원 차관에게만 질문했다. 이 차관이 장관에게 답변을 넘기려 하자 의원들은 큰 목소리로 제지하기도 했다. 해임건의안까지 통과시킨 무자격 장관을 아예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3년 11월 제주도의회 정례회 도정 질문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안창남 도의원이 도정 질문에 앞서 5차례나 지사를 지낸 우근민 지사가 6번째 도지사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등 정치철새 행각을 벌인 것을 꼬집었다. 그리고는 지사께서 편히 쉴 수 있는 특혜를 드리겠다며 환경경제부지사를 상대로만 질문했다. 본회의장에 웃음이 쏟아졌다고 한다. 얼굴이 웬만큼 두껍지 않아서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