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를 퍼부었다. 가장 높은 산마저 물에 잠겼다. 노아는 비가 그치고 7일 후 까마귀를, 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날려보냈으나 뭍을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또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날려보냈더니 올리브 잎을 물고 왔다고 창세기에 전한다. 물이 빠져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육지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3주가 걸렸다. 대홍수로부터 안전한 곳은 방주뿐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 건물을 뒷산과 연결하는 공사가 이뤄졌다. 해일이 몰려올 경우 운동장으로 내려갔다가 뒷산으로 가면 늦다. 교실에서 곧바로 뒷산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큰물을 피하려면 높은 곳으로 가야 하지만, 지진이 발생하면 운동장 등 넓은 장소가 안전하다. 낙하물이 없어 부상 위험이 적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처럼 붕괴로 갇힐 우려도 없다.
지진 진앙지인 경주지역의 초등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식판으로 점심을 먹는 모습의 사진이 신문 지상에 크게 보도됐다. 점심 식사만이 아니라 수업도 운동장에서 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며 문득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고흐의 그림은 칙칙하면서도 감동적인데, 운동장 점심 사진은 밝으면서도 불안감을 준다.
운동장은 도심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피난처이지만 피난처로서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번 지진은 늦여름~ 초가을에 발생해 추위나 더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여름이나 겨울철이라면 더위, 추위가 문제다. 비나 눈이라도 오면 운동장에서 꼼짝없이 맞을 수밖에 없다.
운동장이 피난처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체육관과 연계되어야 한다. 정부가 체육관 짓기를 권장하면서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체육관이 없는 학교가 적지 않다. 급하게 지어진 체육관이 내진 기준을 지켰는지도 알 수 없다.
학교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경주 지진 이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학교 시설 총 2만131동 가운데 78%인 1만5653동이 법적 내진 성능에 미달한다. 이번 지진으로 경주는 물론 울산의 모 초등학교도 복도 벽면이 갈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주 지진은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미미했다. 다행이다. 신라 천년 불국토를 지켜온 부처의 가피 덕이 아닌가 싶다. 그런 행운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