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는 한국사회의 금기 중 하나다. 모병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미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사무실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에 다름없다'. 그런데 뜻밖이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끄집어낸 모병제 이슈에 우리 사회가 너무 조용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수 진영이 의외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시국이 어떤 상황인가. 대통령이 중국 항저우의 G20 회의에 다녀온 뒤 느닷없이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촉구한 마당이다. 여권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에 호응해 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소리 높여 외쳐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라는 이가 모병제라니.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나 남경필의 경기지사 사퇴와 대국민 사과를 외쳐도 시원찮을텐데 이 침묵은 무슨 의미인가.
한국사회에서 징병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병제는 꿈도 꾸지 못한다. 모병제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로망이자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염원이다. 논산훈련소 연병장에서 빡빡머리 아들의 마지막 경례를 받아본 어머니들은, 훈련소에서 소포로 부쳐져 온 아들의 신발이며 옷가지를 보며 눈물을 쏟았던 어머니들은 당신이 못난 흙수저여서 아들을 군에 보내야만 했다고 자책한다. 청문회에 나오는 높으신 양반들은 잘도 빠지던데.
그러고보니 동북아의 화약고라는 한반도 주변국에서도 징병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대만도 모병제다. 남북한만 예외다. 대만은 2013년 모병제 전환을 발표했다가 지원자가 모자라 2017년으로 실시를 연기했다고 한다. 징병제 때도 의무복무 기간이 1년이니 우리와 차이가 있다. 대만이 모병제를 실시하며 내건 월급을 보면 이병 3만3625 타이완달러(117만 원), 일병 3만5230타이완달러(123만 원), 상병 3만6845 타이완달러(129만 원)다. 사회초년생 월급이 100만 원 정도니 꽤 괜찮은 직업인데 말이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청년들은 모병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군대에 제때 갔으면 좋겠다. 입대하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눈에 불을 켜고 지원을 해도 떨어져 재수삼수를 해야 겨우 목적을 달성한다. 이런 것 하나 못 풀어내는 정부와 병무당국이 강군 운운하는 것부터 우스운 일이다. 군이 모병제 여론에 제대로 반론을 펴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잇단 군내 안전사고에 방산 비리까지. 이래저래 모병제가 힘을 얻는다.
김찬석 수석논설위원 chans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