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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홍영철 영화자료 콜렉션의 미래

50년 기록 이용길 화백 '부산미술일지' 시립미술관 보존하듯

부산영화사의 보물 홍영철 콜렉션 시가 활용방안 마련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9-01 19:05:3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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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를 보면, 지상에 내려온 천사들은 도서관에 머문다. 도서관은 사람이 살아가며 보고 느끼고 알고 바라는 것을 한 데 모은 곳. 도서관은 인류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다. 영화 속 천사들은 책꽂이 사이를 걸으며, 책 읽는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본다. 아니, 천사는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다. 그러나 천사는 단지 지켜볼 수만 있을 뿐, 사람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도서관의 책을 읽고 미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뿐이다. 이때 도서관은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알려주며, 인간을 돕는다. 그래서 천사들은 도서관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산에는 두 분의 천사가 미술계와 영화계에 머물렀던 것 같다. 이용길 화백과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 이야기다. 2013년에 작고한 이용길 화백은 1938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부산에 왔고, 부산상고에 이어 부산사범(현재 부산교대)을 졸업한 뒤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퇴직했다. 그는 부산 현대 화단의 형성에 이바지한 화가 김종식(1918~1988)과 임호(1918~1974)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15세 때부터 미술 전시장을 방문하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용길 콜렉션

이 화백은 그 뒤로 50여 년 동안 '부산미술일지'를 기록하고, 각종 전시회 도록과 자료, 신문 기사를 모았다. 지역 예술가와 연구자를 비롯해 그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끈질긴 집념으로 이어 온 것이다. 2007년에는 평생을 모은 팸플릿, 포스터, 기사 스크랩북 100여 권, 미술서적 1만여 권을 대형 트럭에 가득 실어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기증 자료는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보물이다. 정말 부산미술사의 '물적 증거'라고 할 만하다. '부산미술일지'는 1928년부터 1979년까지 부산미술계의 거의 모든 정보를 담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전시를 열고, 글을 썼는지, 한 해에 몇 회의 전시가 열렸고 누가 참가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부산의 미술사를 연구하고 정립하는 작업에 너무나 중요한 토대이다. 그 때문에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미술정보센터'를 따로 만들어 자료를 보관하고, 연구자와 시민이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이 엄청난 자료를 한 사람이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관점에서 이용길 화백은 분명 천사다. 부산미술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지난달 18일에 작고한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 원장은 194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강원도 묵호(현재 동해시)를 거쳐 7세 때 부산에 왔고, 경남상고를 졸업한 뒤 수출입통관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1971년, 그러니까 25세 때부터 부산 각지의 영화관을 방문하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 뒤로 45년 동안 모은 자료가 방대하다. 1971년부터 부산에 문을 연 모든 극장과 개봉영화 간판을 사진으로 담았다. 또 전국 일간지 20여 종을 구독해 영화 관련 기사, 리뷰, 광고를 모두 스크랩했다. 그리고 일본 도서관과 영화박물관도 여러 차례 방문해 일제강점기 부산영화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홍영철 콜렉션

필자가 알기로 부산 최초의 영화관인 행좌(幸座, 1903(?)~1915)의 정확한 위치와 역사를 밝혀낸 것은 홍영철 원장의 업적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제작소인 '조선키네마'의 실제 운영규모와 역사도 홍 원장이 부경대 도서관에 소장된 '조선은행요총'(1925)을 통해 밝혀낸 것으로 안다. 부산 지역 영화계와 학계가 해 내지 못한 일을 오로지 개인적 열정만으로 이뤄낸 것이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5월이었다. 당시 먼구름 한형석 선생이 1951년에 기획한 영화 '낙동강'의 자취를 찾아 헤매던 가운데 홍 원장이 '낙동강'의 스틸 사진 11장을 새로 발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연구원에서 그 사진을 보며 느낀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부산영화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필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관점에서 홍영철 원장은 분명 천사다. 그가 평생에 걸쳐 모은 자료는 대단하다. 부산의 극장 관련 사료와 필름 345편, 시나리오 2090편, 포스터 1만6674장, 도서 3279종, 잡지 5300권, 영화 스틸 사진 4만5375점(2014년 기준)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자료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당장 연구원 공간부터 비워줘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부산시가 이 문제를 미리 챙기지 못한 점이 답답하다. 이용길 화백과 홍영철 원장은 모두 다른 지역 출신이면서도 누구보다 부산문화를 사랑한 분이다. '피란수도 부산'의 상징적 존재들인 것이다. 시립미술관이 이 화백의 자료를 맡았으니 이제 영화의전당이 홍 원장의 자료를 껴안아야 하지 않겠나.

유족들이 자료를 기부한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홍 원장이 자료 수집에 들인 '물리적 비용'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부산시가 어느 정도 부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부산영화 역사를 포괄하는 '홍영철 영화자료 콜렉션'은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에 걸맞은 콘텐츠다.

영화의전당에 '홍영철 콜렉션'을 비치하고, 연구자와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의전당이 그 자료를 정기적으로 전시하면 영화의 상영 교육 연구 전시를 망라하는 곳이 된다. 그야말로 영화의 모든 것을 만끽하는 '시네마 천국'이 되는 것이다. 모쪼록 유족과 부산시가 잘 협의해 영화 애호가와 시민들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주기 바란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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