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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좋은 국회를 만드는 시민운동

의원 무한 연임제는 신인 등용 막아…삼권분립 흔들기도

이념대결 대신 자신의 진영 채찍질하는 시민운동 벌여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4-14 19:31:2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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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치계의 문제점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에 대해 폐쇄적이란 점입니다." 자크 아탈리가 지난 6일 펴낸 책 '프랑스의 성공을 위한 100일'에서 하는 말이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저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30년 넘게 프랑스 정부의 국정자문을 맡았고, 정치·경제·국제·문화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저자가 보기에 프랑스 정계는 정체했다. 격변하는 세계정세를 꿰뚫는 통찰도, 기획도 내놓지 못한 채 신진 정치세력의 형성과 진입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것이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었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할까. 저자는 국회의원 제도부터 바꾸자고 말한다. 먼저 '상원의원 50명, 하원의원 200명'으로 줄이자는 것. 현행 925명(상원 348명, 하원 577명)의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자는 얘기다. 또 저자는 의원 감축에 따른 예산을 '국방 경찰 사법부'로 돌리자고 말한다. 그뿐이 아니다. 저자는 정치계의 세대교체를 위해 의원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자고 주장한다. 의원직을 연임한 사람이 또 출마하지 못하게 '연임제한 규정'을 두자는 거다.

과연 실현 가능할까. 저자는 이탈리아의 사례를 말한다. 이탈리아 의회는 하원을 통과한 개혁 법안이 상원 의원들끼리 싸우느라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걸로 유명했다. 이런 이탈리아가 지난해 40세의 젊은 총리 주재로 총 315석의 상원의원을 100석으로 줄이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프랑스 정계가 그런 개혁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저자가 '정치인'이 아닌 '국민'에게 자신의 책을 바치는 이유다.

■시민이 이끄는 의제

저자는 국회를 불신한다. 그 대신 정치계의 정화를 위해 시민이 나서자는 거다. "시민이 정치인보다 먼저 이 의제를 거머쥐고 카페에서, 집에서 토론하기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저자가 보기엔 프랑스가 지금처럼 '믿기 어려울 만치' 소모적인 정치를 정화하지 않으면, 프랑스의 영광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엊그제 20대 총선을 치른 마당에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당선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의 국회를 지켜본 시민으로서 이번 국회가 더 걱정스럽다는 말은 꼭 하고 싶다. 자크 아탈리의 제안처럼 의원 수를 줄이진 않더라도, 연임을 제한해 신진 등용 기회를 늘리자는 건 우리도 생각해볼 만한 의제가 아닐까. 현재 한국 정치계는 참신한 인물 영입과 신인 등용의 장벽을 높인 채 현역 정치인의 기득권 지키기에 모든 것을 건다는 인상을 준다. 이른바 상향식 공천의 단점도 잘 드러났다. 말이 좋아 상향식이지 '여론조사'로 공천을 결정하는 방식은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더구나 지난해 새누리당이 주도한 국회법 개정안에는 국회가 대통령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개정안이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다. 의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가 시행령을 만들며, 사법부가 법 집행의 공정성과 법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게 삼권분립의 기초다. 시행령이 그 상위체계인 법률에 모순될 경우엔 법원이 개입한다.

국회가 이 원칙을 흔들려 했으니 반대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끝내 무산됐지만, 국회가 행정부와 대통령을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려 했다는 인상을 뚜렷이 남겼다.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국회의원들이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다? 국회가 '현역 영구 집권' 체제로 '국회 공화국'을 만들려 한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국회 공화국?

정치는 국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달리 말해 정치가 국회의 전유물이 될 때 정치는 국회의 기득권을 지키는 행위로 전락한다. 이런 정치 속에서는 국민이 정치에 거는 희망도, 대통령의 소신 정책도 무력해진다. 한국은 이미 이런 조짐을 보인다. 새 대통령이 당선하자마자 정계는 여야 할 것 없이 차기 대선을 준비한다. 대통령 집권 첫해부터 야권은 대통령을 흔들고, 여권은 차기 유력 대선 후보에 줄을 선다.

이런 체제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소신 정책을 펼 수 있겠나. 마치 '아전'들이 '사또'를 농락하는 격이라고 할까. 그리고 국회가 '현역 영구 집권' 체제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제도는 '의원내각제'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는 벌써 의원내각제 얘기가 솔솔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 수준으로는 위험한 제도로 보인다.

내각책임제인 이탈리아에선 지난 70년간 내각이 무려 63차례 바뀌었다. 한국이 내각제를 시행하면 이보다 덜하진 않을 거다. 이탈리아처럼 자성 어린 결단을 내릴 낌새도 없으니까. 현재 정치 수준으로는 극단적 혼란을 빚거나, 아니면 대화와 타협이란 이름 아래 각 정당의 원칙과 가치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나저러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 독재'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단임'이지만, 국회의원은 무제한 연임이다. '연임 제한 규정'으로 국회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이 정당정치를 좋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과제를 생각하는 이유다.

■새로운 시민운동

그동안 시민운동은 좌우 진영으로 갈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힘썼다. 이제는 '긍정적' 운동이 있어야 할 때다. 국회 권력 자체의 방향성을 관리하는 운동. 또 상대 진영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을 채찍질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곧 영국과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국회는 좋은 법을 만드는 데 주력하면 좋겠다. 특히 '남북관계'와 '경제'를 당면 과제로 떠안은 이번 국회는 할 일이 많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근본 가치를 지키는 가운데 각 정당마다 좋은 정책을 내놓기 바란다. 또 의원 기득권 관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대신,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신진 정치세력을 발굴 육성하기 바란다.

필로아트랩 대표·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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