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뒤집혔다. 4·13총선 D-2일 부산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표현대로 부산이 '디비졌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애초 출발은 모든 면에서 야당이 불리했다.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제1야당의 집안싸움에다, 야권 분열이라는 악재가 겹쳤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은 더욱 야권이 열악했다. 여당 전승, 야당 전패라는 분석이 수시로 나왔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곳곳에서 잠깐씩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에이, 그래도 여긴 부산이야"라는 냉소가 이런 기세를 눌러버렸다.
그러나 민심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고 냉정했다.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 민낯을 드러낸 새누리당은 선거운동 기간 "반성한다"며 눈물 흘렸지만, 시민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믿어 달라"고 했지만, 용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던 현역 의원들을 부산에서 전원 공천하고도 "18석 전승"을 외쳤고, 이에 분노한 시민은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거 큰일 났다. 여당 부산 의원 상당수가 3선, 4선이 돼 20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다 가져오게 생겼다"고 큰소리쳤지만, 시민은 부산에서 초선 의원 5명을 탄생시켜 새누리당이 하지 않은 '물갈이'를 대신했다.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6·4지방선거 때 야당이 상식적으로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참패했듯, 여당 역시 이번에 질 수 없는 선거에서 무참히 깨졌다. 민심은 여든 야든 간에 오만하고 배부른 모습을 보일 때 가차 없이 심판했다.
어쨌든 1990년 3당 합당 이후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부산의 운동장은 이제 조금 균형을 맞췄다. 야당으로선 새누리당의 헛발질과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 요구에 힘입어 그토록 원했던 '일할 기회'를 잡았다.
"단 한 석만이라도 달라"는 야당의 호소에 시민은 무려 4석을 더 얹어줬다. 더민주는 이번 총선에서 가덕신공항을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착공하는 조건으로 부산 의석 5석을 걸었다. 그리고 시민은 그 조건에 한 석이라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끔 정확하게 채워줬다. 야당에 일할 기회와 함께 무거운 책임을 준 셈이다.
상징성이 크긴 하지만, 가덕신공항은 하나의 현안일 뿐이다. 400만에서 350만으로 급감한 인구, 인천에 추월당한 경제력, 전국 꼴찌의 고용률, 전국 최고의 청년실업률과 고령화율, 서울보다 3년이나 짧은 평균수명, 쇠퇴와 절망의 도시…. 더민주는 그동안 이처럼 골치 아픈 부산의 문제가 새누리당의 25년 일당독점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시민이 견제와 균형의 지위를 부여해준 만큼, 이젠 야당이 성과와 결실로 보답할 차례다. 명심하기 바란다. 4·13총선에서 더민주의 부산 5석은 온전히 야당의 실력으로 얻은 게 아니다. 민심은 새누리당이 워낙 자살골을 차 넣는 바람에 대안을 선택한 것이지, 더민주에 완전한 신뢰를 보내지는 않았다. 아직 부산 18석 중 12석은 새누리당 차지다. 또 부산시민은 내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4년 후 다가오는 21대 총선에서 언제든 판을 뒤집을 수 있다.
4년이 흐른 뒤 지금의 새누리당이 그랬던 것처럼, "반성한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이런 말은 하지 말자. 더민주 김영춘 김해영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당선인은 이번 총선 결과를 시민의 선물이라 생각 말고,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이시라.
정치부 차장 pear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