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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위선의 교육

실용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못한 국영수 중심 교육

대한민국 학교는 '말 잘 듣는 노동자' 양산에만 몰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2-25 19:24:23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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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박지원은 벼슬을 하기는 했지만,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아니다. 그의 벼슬은 음직(蔭職)이었다. 과거장에 들어간 적은 있었지만, 답안지에 그림을 그려놓고 나왔다. 연암과 절친한 벗이었던 홍대용 역시 과거 출신이 아니다. 그 역시 과거장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합격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 두 사람은 과거 자체를 비판하였다.

과거의 시험과목은 시나 부(賦)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반들이 평소 짓는 시와 부와 아주 다른 형식의 오로지 과거에만 쓰이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과문(科文)을 아무리 잘 짓는다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학문이나 능력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학문, 곧 성리학은 윤리적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윤리적 인간이 관료가 되어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 양반들의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과거로는 윤리적으로 성숙된 사람도, 행정능력을 갖춘 관료도 뽑을 수 없었다.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조선조 말까지 시행되었다. 조선의 지배계급, 조선 후기로 치자면 극소수 벌열들은 그 모순을 몰랐던 것인가. 아니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고치지 않았다. 바로 그 모순 위에서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조선시대 과거를 생각하면 저절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문제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교과목을 꼬투리로 삼아보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수많은 과목을 배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 과목들이 어떻게 해서 거룩한 교과목의 반열에 올랐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 절대다수의 국민은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다니고 있지만) 언제부터, 무슨 의도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교과목이 구성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당연히 여겼을(여기고 있을) 뿐이다. 또 그렇게 구성된 교과목이 어떤 '인간'과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묻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막연히 선량한 목적을 가진 것이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육이라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것' '뭔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란 생각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입하면, 이런 질문이 될 것이다. 지금의 교육은 윤리적 인간을 만드는 것인가, 세상의 진실을 알도록 하는 것인가, 실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얻게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교육과 교과목은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단박에 답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이 모양일 수는 없을 것이다.

교과목들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이른바 국영수다. 나는 지금도 국영수가 왜 배점이 높은 중요 과목이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초중고교 12년 동안 국어(한국어)를 배우고 나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나의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은 초중고교 국어시간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교과서 밖의 책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어를 그렇게 집요하게 가르치는가. 곧 한국인이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영어와 수학은 왜 주요 과목인가. 영어를 익혀 세계시민으로서의 교양을 얻기 위해서인가. 수학을 통해 자연이 수학적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영어와 수학 과목의 끝이 향하는 곳은 비즈니스와 이윤을 낳을 수 있는 기술일 것이다.

거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교과목은 국어와 영어·수학의 연장일 것이다. 예컨대 국어 과목의 연장은 국사와 사회 과목일 것이다. 그 외의 과목은 기타 과목이 된다. 곧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과목일 수 있는 체육 예술 윤리나 철학 따위는 몰라도 그만인 과목들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인간의 삶 자체를 이루는 원천적인 실용지식들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60, 70년 전만 해도 누구나 가졌던 지식들, 예컨대 농작물을 기르고, 천을 짜고, 옷을 만들고, 다양한 음식을 조리하고, 집을 짓는 그런 실용지식은 전혀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은 오직 상품으로만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요과목의 성격을 반추해 보면, 한국 교육의 목적이 '국민'을 제작하고 '노동자'를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의 그 거룩한 교육은 거의 모든 사람을 개별성을 초월한 동일한 국민으로 만드는 동시에 오직 일만 하는 노동자로 만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둘 중 개인에게 현실적으로 보다 강한 구속력을 갖는 것은 후자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내용은 시험을 통해 강제로 주입되고, 최종적으로 수능 성적에 따라 위계화된 대학(혹은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을 배정받고, 대학의 등급에 따라 다시 직장이 배정된다. 배정은 곧 취업이다. 취업이 되었다는 것은 노동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국민 대부분은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달리 말해 노동자로서의 존재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요, 토대인 것이다. 교수인 나 역시 기본적으로 교육노동자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학교 교육에서 가장 우선해 가르쳐야 할 것은 노동의 역사와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에 대한 지식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 교육에서 노동자, 노조란 말은 기피하는 어휘다. 본말이 전도된 위선의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 과거와 교육이 윤리와 실용 모두를 외면하고 오직 극소수 벌열의 지배도구가 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최근 서울의 동국대부속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다룬 드라마 '송곳'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해당 교사를 경고하고 다른 학교로 강제 전보한 사건이 있었다. 노동자가 될 사람들에게 노동자의 실상과 노동문제를 다룬 드라마를 보여준 것이 문책 사유가 된다니, 대한민국의 위선적 교육의 민낯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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