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닉스를 아십니까. 센서와 제어기기 같은 산업자동화 부품 전문 기업. 1977년 설립된 벤처 1세대 대표기업. 부산 해운대 반송동에 본사가 있다. 2013년 정부의 '월드클래스 300', 코트라의 '월드 챔프'에 선정됐다. 이 분야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 수준의 기업임을 인정받은 것. 외형뿐 아니라 내실도 알찬 기업으로 정평이 났다. 지난해 잡플래닛-포툰지가 선정하는 '베스트 컴퍼니'에 '중견·중소기업 종합 만족도 부문과 경영진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의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됐다.
오토닉스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별세한 창업주의 2세가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여느 2세 기업인과 달리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판매·기획 등 현장을 두루 거치며 '소통의 경영' 과정을 밟았다. 승계와 관련된 분란이나 2세 경영인에 대한 거부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직원들의 애사심은 더욱 높아진 듯하다. 1000여 명의 직원은 내남없이 새로운 대표이사를 맞아 2030년 매출 1조 원 달성 등 제2의 오토닉스 역사를 쓰자고 다짐하고 있다.
고 박환기 회장을 아십니까. 오토닉스 신화의 비결이자 원동력은 오토닉스 창업주 고 박환기 회장의 정도경영 정신이다. 한 사람의 진가는 사후에 더욱 분명해진다고 했던가. 박 회장의 사후 그의 정도경영의 실체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직원들이 이에 감동해 애사심으로 더욱 뭉치고 있다. 연구개발을 중시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무엇보다 회사는 개인소유물이 아닌 사회적 재산이라는 박 회장의 평소 경영철학이 생생한 사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 박 회장은 상속 재산의 90% 이상을 개인 소유가 아닌 법인재산으로 남겨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가 오토닉스를 자신의 개인 소유물이 아닌 직원과 사회의 재산으로 여기며 경영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1989년 법인 전환 후 오토닉스의 이익누계액은 1878억 원에 이른다. 박 회장은 이 이익금액의 거의 전부를 회사에 재투자했다. 차입금은 제로다. 매출과 이익의 증대, 재투자를 통한 지속적 성장과 고용창출에 매진한 정도경영의 표본이다. 2012년 모범납세자로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을 정도. 이익금의 대부분을 개인 배당으로 처리해 개인재산화할 수 있는데도 박 회장은 그러지 않았다. 개인재산은 매출액 1600억 원인 중견기업의 오너치고는 너무나 소박하다는 사실이 상속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 박 회장의 사례는 통념에 비춰볼 때 매우 희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비자금 조성으로 물의를 빚거나 회사는 도산했는데도 엄청난 재산가로 건재하는 기업인에 관한 뉴스가 생소하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지 않은가. 심지어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마저도 거액의 비자금 조성과 전환사채 편법 증여 논란을 일으킬 정도. 증여세를 내지 않고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불법·편법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사례는 기업인은 부도덕하다는 생각, 혹은 반기업인 정서를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박 회장의 사례는 더욱 소중하다. 박 회장처럼 기업을 사회적 재산으로 여기는 기업인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고 박 회장은 기술벤처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의 모범을 보여줬다. 오토닉스는 총이익금의 56%를 R&D에 재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기업의 R&D 투자 비중이 이익금의 1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재투자로 지속적 성장을 꾀하되 기술개발에 집중한 것이다. 근저에는 국산화에 대한 도전정신이 자리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부품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산화에 성공했고, 손쉽게 규모를 키울 수 있는 OEM(주문자표시) 방식을 거부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독자 브랜드로 키웠다. 벤처기업인의 중요한 덕목인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엄두를 내기 힘든 성과다. 이것이 오토닉스를 업계 국내 1위로 올린 원동력임은 쉽게 짐작된다. 박 회장은 생전 사내 연구소 소장을 겸했다. '영원한 R&D CEO'를 꿈꾸며 실천한 것이다.
박 회장의 정도경영 정신은 그의 고단했던 성장환경을 상기하면 더욱 빛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소년가장이 되어 온갖 풍파를 겪었다. 여동생은 지난해 추도사에서 겨울바람처럼 엄하면서도 한없이 자상했던 오빠의 일화를 떠올리며 흐느껴 주변을 더욱 숙연케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 번 돈으로 소풍가는 여동생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었다고 한다. 여동생은 오빠를 집안의 기둥이자 '금정산의 큰 바위'로 회상했다.
오는 27일은 박 회장의 1주기다. 향년 61세로 애석함이 더하다. 경제가 어려운 시대,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투자를 꺼리는 기업이 많은 요즘 박 회장의 정도경영 정신은 귀감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불세출의 벤처기업인을 잃었다. 하지만 연구개발 CEO의 전설을 영원히 갖게 되었다.
논설위원 pin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