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하는 등 감기증세를 보이다 불과 수시간 만에 사망한다. 이 남자가 사망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시민들이 곳곳에서 죽어간다.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유례 없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병한 것이다. 정부는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시민들을 격리수용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얘기인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아니다. 2013년 8월 개봉된 영화 '감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한국형 재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 정체불명의 전염병은 변종 감기 바이러스에 의해 만들어진 전혀 새로운 초특급 감기다. 이 변종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의 한 종류인 H5N1의 변종으로 영화 속에서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영화적 장치로 활용된 '변종 바이러스'라는 개념은 매우 강력했다. 관객은 '변종 바이러스'의 정확한 실체를 모르면서도 새로운 전염병의 가공할 위력을 수긍했던 것이다. 그만큼 '변종'은 다양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병리학적으로도 변종이 무서운 건 사실이다. 우리 몸은 기생하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싸우고, 이를 퇴치하면서 면역을 갖게 된다. 그 바이러스 백신으로 예방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바이러스의 변종이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혀 새로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독감도 처음엔 엄청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2500만 명, 1957년 아시아 독감은 1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우리 인간은 면역체계를 갖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의 원인 바이러스에 변이가 있었던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는 소식이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연구팀이 메르스 환자 8명에게서 채취한 객담 등의 가검물을 이용해 메르스 바이러스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다. 발생지인 중동의 환자 그룹에서 나온 메르스 바이러스와 0.1%의 유전자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메르스가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인 감염력을 보인 이유가 이 변이와 관련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당국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단순한 변이가 있었을 뿐 변종은 아니다"라고 한다. 메르스 변이 사실을 애써 평가절하 하려는 인상이 역력하다. 이 또한 변종에 대한 공포 유전자의 발로 아닐까.